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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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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인정을 하자


BY 만석 2020-11-14

"어머나 어쩌나. 괜찮으세요?"
넘어지는 나보다 곁에서 걷던 큰며느님이 더 놀란다.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던 내가 발을 헛딛었는지, 그만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저만치까지 날아간 손가방을 챙겨다 주며, 여학생이 걱정스 러운 듯 고개 숙인 내 코 앞으로 제 얼굴을 들여민다. 며칠 잠잠하더니 또 괜시리 넘어져서, 내 며느님을 놀라게 만들었나 보다. 며느님이 내 손을 이끌어 세우지만 다리가 제 멋대로 논다.

아무튼 이렇거나 저렇거나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과 큰며느님에게 손사례를 치어보인다.  앉은 김에 쉬어간다고 잠깐 정신을 가다듬고는, 넘어진 자리를 살핀다.
"아무 것도 없구먼서도..." 맥없이 넘어진 나를 자책하며 둘러선 이들에게 싱긋 웃어 보인다.
"그것 보세요. 제 손을 잡으시라니까." 며느님이 나무라며 내 손을 더듬어서 잡는다.

'이상하다.'요새로 이유도 없이 넘어지기를 잘한다.
"괜찮으세요?"며느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릎을 만져본다.  무릎이 깨졌을까? 아프다. 그래도 안 아픈 척, 애써서 잘도 걷는다.
"이젠 제 손을 꼭 잡으세요." 큰며느님이 제 딸을 나무라듯 한다.

이젠 아이들이 내미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앙탈도 부리지 못하겠다. 길을 나서면 아이들이 손을 잡는 게 싫어서 마다했는데 말이지. 아직은 그리 되지 않았다고 호언장담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들 며느리들은 같이 길을 나설 때면 내 손을 더듬어 잡곤 한다. 특히 병원 나들이가 많아지면서부터 달라진 풍경이다.

허긴. 그러고 보니 아이들 손을 빌릴만한 나이가 되긴 했나 보다. 이제는 칠십에서 헤아려 오르는 것보다, 팔순에서 물구나무 서듯 헤아려 내려오는 게 더 빠른 내 나이의 셈법이겠다.  앞으로는 추운날이 많다며, 집의 계단을 내려서서 배웅하는 어미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헤아려야겠다. 아래와 위층을 바꾸어서 살아야겠다는 아들의 걱정도 빈말이 아님을 인정해야겠다.

"왜 대답을 안 하세요."며느님이 갑자기 큰소리로 떠들며 내 귀를 찾는다.
"뭐라고 했는데?"
"안 들리세요?  제가 아프신데 없으시냐고 물었는데요."
이런 이런!! 이젠 귀도 먹은 겨? 이제부터는 아이들 말을 잘 듣는 더 어린 아이가 되어야겠구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