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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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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10) - 이쁜 치매


BY 귀부인 2020-08-18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 고맙다, 잘 먹었다, 니가 있어서 내가 펺케 

지낸다.' 이다. 아침, 저녁으로 차려 드린 음식 드시고 어머님이 늘 내게 하는 

말씀이다. 가끔 입맛없다 하실때도 있지만, 어떤 음식을 차려 드리던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우신다. 입맛이 까탈스럽거나, 반찬 투정이라도 하시면 

엄청 힘들었을텐데 그러질 않으시니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가끔 이것저것 반찬이라도 장만하느라 부엌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라도 

하면, 꼭 부엌으로 들어 오셔서,

"번거롭게 반찬 여러가지 하지마아. 한, 두가지만 있어도 밥은 먹으니께, 

일부러 나 준다고 힘들게 뭘 하지마아. 나 혼자 있스믄 상 차릴것도 없이 

김치, 짠지 하나 놓고 먹어도 암시렁 않을텐디이." 하신다.


 올해 83세,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부엌 일을 졸업 하신 어머님은, 

아직까지  며느리가 해 주는 음식 받아 드시는게 익숙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내가 부엌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불편해 하신다. 그러다 보니 음식은 어머님 

안 계실때 미리미리 해 두고, 설겆이도 최대한 빨리빨리 끝을 낸다.


 치매에도 사람에 따라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는데, 대부분 성품대로 

나온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듯하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지난 번 

'부엌의 아들' 사건 이후론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다행이도  조기에 증상을 발견한 덕에 약을 복용하신 

이후론, 기억을 잃어가는 속도가 느린 것 같다.


 가끔 무얼 찾으시는지 이 서랍 저 서랍 뒤지기도 하시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시어머니처럼, 뭐가 없어졌다고 며느리를 의심하며 머리 끄덩이 

잡고 폭언을 퍼붓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치매를 앓으시기 전에도 원래 

잔소리를 많이 하는 분은 아니었다. 단지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으셔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신지 몰라 조금은 불편하고 조심스러웠었다.


 하지만 요즘은 말씀도 많아지시고 ,며느리인 나에게는 고맙단

소리를 입에 달고 사신다. 가끔 손자, 손녀들과 통화를 할때면 목청껏

"사랑한다. 보고싶다. 니가 자랑스럽다." 라는 소리를 마치 늘 그래왔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하신다.

"아휴, 어머님이 진작 좀 이렇게 사셨으면 얼마나 좋아요." 라는 동서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얼마전엔 시골에서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동생이 걱정 되었는지, 작은 

언니가 전화를 했다. 요양 병원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는 언니는, 여러 형태로 

드러나는 치매 할머니들의 고약한 증상들을 보아 온 터라 동생인 내가 많이 

걱정 되었나 보다.


 그러나 나와 어머니의 평온해진 일상 이야기를 듣곤 독실한 신자인 언니가 ,

"어마나, 얼마나 다행이니? 나는 행여나 너의 시어머니가 내 동생 너무 힘들게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차암, 하나님이 너를 많이 사랑 하시나 봐. 착한 치매라 너도 너의 시어머니도 

서로 힘들지 않게 해주셨으니 말이야." 라고 했다.


 언니의 말마따나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일상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시어머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 한테는 무척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아버님께서 나이가 드시면서는 큰 아들을 곁에 두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많으셨을텐데, 한국에 들어오면 할 일 없다시며, 아들이 은퇴할 때까지 

건강지키며 기다리마 하셨었는데....

이제 두 번 다시 내 손으로 따듯한 밥 한끼를 차려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시골 생활을 아는 몇몇 지인들이 '대단하다, 효부다, 나 같음 그렇게 

못한다.' 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또 어떤이는 표현은 이렇게 해도 '쳇! 

한 재산 크게 물려 받았나 보지?' 하고 속으로 비아냥거릴 사람들도 

있을지도....) 어쨌거나 나는 효부도, 남들이 못할 일 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나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서 조용히 시부모님 

잘 봉양 하시는 분들도 많으실테고...

난 그저 그냥 맏며느리로서의 도리 (인간된 도리라 하자.)라 여기고 내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앞으로 어머님이 어떻게 변하실지에 대한 걱정이나, 언제 내가 남편 곁으로 

돌아갈 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싶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매 순간을 어머님과 나 둘이서 만들어가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라 여기며 살고 싶다.


이쁜치매 울 어머님이 계속 이쁘게 머무시길 간절히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