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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7) - 고통 총량의 법칙


BY 귀부인 2020-08-07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재밌는 말이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사람이 

살면서 평생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인데, 김두식님의 

책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딸이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사사건건 그와 충돌을 일으키자 ‘희망제작소'의 한 지인에게 그 

고민을 털어 놓았고, 그 지인은 아래의 답을 주었다고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 

그는 아마 이 답을 통해 사춘기 딸을 둔 부모로서 어느 정도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에 오기 전에 내가 걱정한 것은 크게 두가지 였다. 첫째는 어머님과 

단 둘이 지내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 이었다.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닌,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분과 어떻게 지내야 할 지에 대한 막연함 에서 오는 

두려움 이었다.


둘째는 이제껏 대도시에서 나름 문화 생활을 누리며 살아 왔는데, 비록 

산골 마을은 아니지만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 들어가야 있는 시골 

마을에서, 넘쳐나는 그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에서 오는 두려움 이었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리고 보니 이 두 가지는 내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더 큰 문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행이 이쁜치매 초기이다. 진행 속도를 늦춰주는 약을 

복용하셔서 그런지 내가 돌보기 어려울 만큼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있는 시간으로 인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낮에는 노인돌봄센터에 가시고.


처음엔 수퍼도 없고 뭐 하나 필요하면 버스타고 나가야 하니 시골 생활이 

너무 불편했다. 집이 읍내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 불편도 적응이 되었다. 넘쳐나는 한가한 시간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서 지원

하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한 주간 읽을 책을 빌려 오면 

되는 거였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는, 아니 어쩌면 예상 못한 내가 너무 바보 

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정확히 말하면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듦이다.


'코로나' 라는 초유의 사태로 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지난 4월에 아버님이 

돌아 가셨는데도 우리 부부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아버님 돌아 가신지 한달 반이나 지난 후에야 나 혼자, 사실상 추방에 가까운 

형식으로 공항이 열리자마자 입국을 했었다.

혼자되신 어머님 돌보겠다는 순진하고(?) 순수한 일념으로....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장남이란거다. 우리 부부로서는 가까이서 돌보지 

못한다는 죄스러움에 경제적 지원에서부터 여러모로 나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부모님들을 도와 왔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편이 해외 살면서 평생 부모님 돌보지도 않았고, 

게다가 아버지 장례식에는 오지도( 그들도 안다. 올 수 없었던 상황을) 

않은 천하에 괘씸한 사람으로 매도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버님 떠나시는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해 가슴 아파했던 우리 

부부에게 따듯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괘씸함이 먼저였다.

동생들의 원망, 친척들의 한마디씩 건네는 불편한 말들과 간섭, 거기다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여러 문제들 까지......


얼마전에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힘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듣던 친구가,

"고통에도 총량이 있다고 생각해. " 라는 말을 했다. 다른 여러 말도 했지만 

그 말이 내 마음에 확 와 닿아 다른 말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친구의 말을 듣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듯이 모든 며느리들도 시월드에서 

겪어야 할 '고통'의 총량이(그것이 크던, 적던) 있는게 아닐까 하는....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 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채워 가는 중이 아니라, 

시월드에서 겪어야 할 '고통' 총량을 채워가는 그 시작점에 서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 온 삶을 돌아보니 내가 시집살이라곤 하지 않은 것 같다. 1년에 한번 

한국 방문하면서 가끔 시동생, 시누들을 만나거나 친척들을 만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어쩌다였다. 오로지 시부모님들께만 충실했고, 

두 분의 사랑도 받아 왔으니 시집살이를 통한 마음 고생이 전혀라곤 할 순 

없지만 딱히 시집살이라고, 힘들었다고 할 만한 일이 없었다.


내 나이 쯤이면 어느 정도 그럭저럭 시월드에서 겪게 될 '고통'의 총량이 채워진 

나이 일텐데.... 이제서야 고통의 총량을 채우기 위해 시월드에 입성한 나에게, 

앞으로 또 어떠한 일들이 더 닥쳐올지 좀 두렵기도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맏며느리의 품위와 권위를 지키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시월드에서의 

고통의 총량을 지혜롭게, 최대한 상처받지 않으면서, 그리고 묵묵히 견디면서  

채워 나가리라 다짐해 본다.

아자!! 화이팅!!

아 , 그런데 천천히, 조금씩 , 가끔씩이면 좋을텐데....

한꺼번에....

세다....

쓰나미 급이다.

힘들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