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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함께(6) - 부엌의 아들


BY 귀부인 2020-08-05



최근 몇 년을 제외하면 살아 생전 아버님은 외식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다. 

어디 일 보러 나가셨다가도 식사때가 되면 꼭 집으로 오셔서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가끔 한 끼 정도는 밖에서 드시고 오면 좋으련만 어딜 가도 어머니 만드신 

음식만 못하다 하시면서 밥 만큼은 꼭 집에서 드셨다고 한다. 


나도 아버님으로부터 전국 어디든 맛있다 하는 식당엘 가서 먹어 봐도 너 어매 

손맛 만 못하다고 하시던 말씀을 여러 번 들은 기억이 있다.


기막힌 어머님의 음식 솜씨를 우리 남편도 좀 닮았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울 남편은 요리에 한에서는 요즘 말로 똥손이다. 어머님의 음식 솜씨는 막내 

시동생이 그대로 물려 받았다.


지난 주말, 시동생이 형수님 고생한다며 고맙게도 점심 한 끼는 본인이 대접 

하겠다고 했다. 덕분에 동서와 나는 한가로이 거실에 앉아 TV를 보며 담소를 

나누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어머니 뭐 하시나 봤더니 전국노래자랑 시청 

삼매경 중 이셨다.


두 며느리는 거실에서, 어머니는 안방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는데, 부엌에선 

무슨 음식을 하나 칼질 소리가 요란했다. 귀 밝으신 어머니 TV 시청 와중에도 

들으셨나 보다. 열린 방 문 사이로 두 며느리들은 소파에 앉아 놀고 있는네, 

부엌에선 도마소리 들리니 이 무슨 일인가 싶으셨나 보다. 급기야 방에서 나와 

부엌문을 여신다. 

거기 사랑하는 막내 아들이 음식을 하고 있는 걸 보신거다.


갑자기 벼락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렸다.

" 아니, 집안에 여자가 셋이나 되는데 왜 아들이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는겨? 

어여 나와아!!." 라며

냅다 소리를 지르신 거였다. 깜짝 놀란 나와 동서가 용수철처럼 튕기듯 일어나고, 칼질하던 시동생이 부엌에서 다급히 나와,


" 엄마, 오랜만에 엄마한테 내가 맛있는 음식 한 번 대접 할라고 그러지이." 라고 

달랬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 나는 펴어생에 너거 아부지한테 부엌에서 음식 한 번 하라 안 시켰다. 여자가 셋이나 있는데 왜 니가 부엌엘 들어가아, 들어가기일! 얼른 나와아!!" 하고 막무가내로 아들 나오라 성화 셨다.


동서가 얼른 시동생 내 보내는 시늉을 하며,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셔. 얼른 아들 내 보내고 우리가 밥 할텐게에." 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닌 도무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 휑하니 찬바람 소리 내며 바깥으로 나가셨다.


한 번도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걸 본적이 없는 나는, 너무 놀라 가슴이 다 벌렁 거렸다. 동서 내외가 음식 준비하는 하는 부엌으로 들어 가기엔 , 왠지 내가 방해꾼이 

되는것 같았다. 어머니 눈에 띄지 않게 뒷문으로 살짝 집을 빠져 나와 놀란 가슴 

다독이며 하릴없이 논둑길을 서성였다.


치매로 인해 감정 조절이 안될 수 도 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느닷없는 고함 소리에 나도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감정 기복이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함께 뛰는 가슴이 쉽게 진정되질 않았다. 

한참이 지나 점심 준비가 다 되었는지 멀리서,

"큰 엄마 식사하세요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별 다른 반찬은 없었지만 먹음직스런 제육볶음 한 접시에, 밭에서 갓 딴 싱싱한 

상추를 보니 좀 전에 놀란 가슴 어디로 가고 입 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어린 조카가 아빠표 제육볶음 한 입 가득넣고 엄지 척하며 한 마디 했다.


" 큰 엄마, 우리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 아빠가 만들어 준 음식이 더 맛있어요. 

아빠가 엄마보다 음식을 더 잘해요." 라고 했다.

"너희 집에서는 아빠가 밥 한다니?" 어머니 표정이 굳어지며 어린 손자에게 

물으셨다. 눈치 빠른 동서가 아들이 대답하기 전에 얼른,

"아이, 어머니, 집에선 제가 밥 하죠오,어쩌다,어쩌다 한 번 하는 건데요. 뭐어." 

했다. 어머닌 소리 지른걸 잊으셨나, 아들이 만든 제육볶음을 맛있게 드셨다.


저녁 까지 먹고 가겠다던 동서네 식구는 오후 느지막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들 

식구 보내고 서운 하셨는지 한참이나 현관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가 뜬금없이 

한마디 하셨다.

"하이구우, 너거 아부지가 나를 그렇게 고상 시켰을까? 평생 집 밥을 드셨어어. 

볼일 보러 나갔다가도 때 되면 영락없이 집에 와서 밥을 먹었어어". 아부지는 

숫제 암것도 할 줄 몰랐어. 그저 해 주는 밥 꼬박 꼬박 드실줄만 알았지이."


나는 속으로 말했다. 

소심하게......

'아이구, 어머니도 힘드셨구만요. 그래도 아들이 부엌에서 밥 하는 건 싫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