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저녁 무렵 답답한 가슴이 조금이나마 풀리길 기대하며 집 뒤안길로 연결된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비온 뒤의 물기 머금어 촉촉하고 시원한 저녁 바람이 친구하자 달려 드는데,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으로 인해 전혀 시원함을 느낄 수 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저께 까지만 해도 노인 돌봄 지원 센터로 다니시겠다던 어머님이 막상 센터로 다니시기 하루 전 날이 되자 절대 안 간다고 선언 하셨기 때문이다. 치매 5등급 판정을 받으신 어머님을 노인 돌봄 센터로 다니시게 하자는 형제들의 뜻이 모아진건, 내가 한국으로 들어 오기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흔쾌히 자식들 뜻에 따라 어머님도 다니겠다고 약속을 하셨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손아랫 동서와 함께 어머님을 모시고 집에서 가깝고(차를 오래 타지 못하신다. 멀미 때문에),마침 사촌 동서가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노인 돌봄 센터를 방문 했었다. 센터 규모는 그리 크지도 않고 , 그리고 시설이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인 돌봄 센터 앞으로 논, 밭이 펼쳐져 있고 , 주변엔 일반농가들이 있어서 시설이 주는 위화감이나, 거부감이 없었다. 어머님 사시는 동네와 별반 차이가 없어 마치 다른 동네로 놀러 오신 듯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 맘이 놓였었다.
오전 9시까지 센터로 가셔서 요일별로 각기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물리치료, 운동, 놀이치료, 목욕, 시장 구경 등)후에 오후 5시 가량이면 집으로 돌아 오시는 스케쥴을 소개해 주었다. 프로그램 소개를 들어보니 하루에 소화하는 활동이 많지 않아 너무 부실하다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러나 비록 정신적으론 어린아이때로 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지만, 육체적으로는 어린아이의 에너지가 아닌, 83년이나 무리하게 사용하여 연약해진 체력인지라 지나치게 많은 프로그램은 오히려 어머님을 힘들게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다른 곳을 더 알아 볼 필요없이 ** 노인 돌봄 센터로 다니실 수 있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센터 다니시는 첫 날인데, 아버지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데를 가느냐고 나는 절대로 안 가겠다며 고집을 부리시는 것이었다.
지난 주 상담을 할때 센터 직원의 당부가 생각 났다.
" 처음엔 당연히 가시지 않겠다 하실거예요. 하지만 싫어 하셔도 3일은 무조건 보내셔야 합니다. 유치원에 처음 가는아이들이랑 똑 같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아이들이 처음에는 울며 불며 안간다 하는거랑 같다고 생각하시고 맘 약해지시면 안되요. 적응이 되시면 아마 어머니께서 먼저 센터 보내달라 하실 거예요. 집에 계시면 우울증도 심해지시고 치매 진행도 빨라 질 수 있으니 센터 나오셔서 놀이치료도 받으시고,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대화라도 하시다 보면 슬픈 일도 잊게 되고, 또 피곤 하실테니 저녁에는 잘 주무실 거예요."
아닌게 아니라 어머니의 일과를 보면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신 후 집 앞 텃밭가로 나가 우두커니 앉아서 한숨을 쉬신다. 설겆이 끝내고 나서 말동무 해드리기 위해 어머님 곁에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 보면 1시간가량이 흐른다. 그러면 피곤하다시며 방으로 들어가셔서 힘없이 드러누워 또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신다.
그리고 이내 TV를 켜놓고 주무시다 말다를 반복하시다 보면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된다. 점심 드시면 또 다시 텃밭으로 나가시고, 오후 낮잠 주무시고...
그러다보니 저녁엔 잠을 통 못 주무시고 한숨 소리와 함께 뒤척이시는 바람에 나도 선잠을 자게 된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치매도 치매지만 우울증이 심하다며 집에만 계시게 하지 말고 가능하면 바깥 나들이를 하시게 하라고 권하셨기에 센터 다니시게 하는게 정말 잘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센터 직원의 당부의 말을 충분히 이해 하지만 맘이 약해진다. 이렇게 완강히 싫어하시는데 다니시게 해야 하나, 행여나 요양원에 보내는걸로 오해 하시는건 아닌지도 걱정이 되고.... ( 어머니는 지난 주 센터 다녀오신걸 까맣게 잊으셨다.) 딸이라면 아마 설득하다 안되면 우격다짐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며느리 입장이고 보니 그럴 수 도 없다.
사실은 나도 어머님과 함께 지내면서 하루 종일 같이 있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머님을 위해서라지만 나를 위해서도 어머님이 센터 다니시길 내심 많이 원했던듯 하다. 평생 의지하며 60년 넘께 함께 하던 아버님이 갑자기돌아 가셨으니 그 충격이 오죽하랴 싶어 이런 저런 말로 어머님을 위로하고 말동무도 해 드리려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아버님 돌아가신 경위를 매일 반복해서 듣게 되고, 슬퍼하시는 어머니 옆에 있다보니 나도 우울에 전염이 되는기분이 들었다.
에휴 ! 기도가 절로 나온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님을 위해 과연 어떻게 해야 옳은건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