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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BY 봄비 2020-05-21

아래의 글은 20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고 신영복 교수의 글이다.
형수한테 쓴 편지다.
정치사범으로써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분이라는 평가와 함께 현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한테는 비난의 목소리도 동시에 듣고 있는 분이다.
나는 이 분의 글을  모든 정치적 평가들을 다 내려놓고
오랜 교도소 생활을 글로 이겨낸 사람의 글,
삶의 가장 밑바닥 생활에서 가장 낮은 마음이었을 때의 감성으로 쓴 글,
억울함과 분노를 이겨내고 답답한 곳에서 담담히 하루하루를 보낸이의 글로만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가장 잘 쓴 수필로 꼽는 글이기도 해서 직접 타이핑해서 옮겨본다.

어느 날, 교도소에 황소 한 마리가 왔나본데 그 날의 감상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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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얼마 전에 매우 크고 건장한 황소 한 마리가 수레에 잔뜩 짐을 싣고 이곳에 들어왔습니다. 이 '끝동네'의 사람들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관심으로 공장 앞이나 창문에 붙어서 열심히 바라보았습니다.
 더운 코를 불면서 부지런히 걸어오는 황소가 우리에게 맨 먼저 안겨준 감동은 한마디로 우람한 '역동'이었습니다. 꿈틀거리는 힘살과 묵중한 발걸음이 만드는 원시적 생명력은 분명 타이탄이나 8톤 덤프나 '위대한 탄생'에는 없는 '위대함'이었습니다. 야윈 마음에는 황소 한 마리의 활기를 보듬기에 버거워 가슴 벅찹니다.
 그러나 황소가 일단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서자 이제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우람한 역동 뒤의 어디메에 그런 엄청난 한(恨)이 숨어 있었던가. 물기어린 눈빛, 굵어서 더욱 처연한 두 개의 뿔은, 먼저의 우렁차고 건강한 감동을 밀어내고 순식간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잔잔한 슬픔의 앙금을 채워놓습니다.
 황소가 싣고 온 것이 작업재료가 아니라 고향의 산천이었던가. 저마다의 표정에는 "고향 떠난 지도 참 오래지?" 하는 그리움의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이 '끝동네'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고향을 떠나 각박한 도시를 헤매던 방황의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이기에 때문에 황소를 보는 마음은 고향을 보는 마음이며, 동시에 자신의 스산한 과거를 돌이켜보는 마음이어서 황소가 떠나고 난 빈자리를 그저는 뜨지 못해 하였습니다.
 황소는 제가 싣고 온 짐보다 더 큰 것을 우리들의 가슴에 부려놓고 갔음에 틀림없습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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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생활이라하면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본 장면, 각종 영화에서 본 장면이 전부라 아는 바가 없지만 나는 가끔은 답답한 감옥에 갇혀서 사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때문에 어렴풋이 그 곳의 답답함을 상상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글에서 작자가 느꼈을 감상이 마음에 와 감긴다. 황소를 보았을 때의 우람한 생명력에 감탄하고 슬픈 눈망울에 울컥했을 것 같은 그 마음.그리고 더불어 연상되는 고향의 산천.....황소가 돌아간 뒤 작자와 더불어 그 곳 사람들 가슴에 일렁였을 그 무엇들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같이 뭔가로 일렁인다. 황소가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이었을지 잘 모르겠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일종의 삶의 비애감이 아니었을까. 나는 이 글이 문득 문득 떠올라 다시 펼쳐서 읽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