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두려움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니 아직 진행형이니 대단하다가 맞다.
내가 사는 곳에 확진자가 한명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 즉시 가게문을 닫았다.
두 곳의 가게문을 닫고 두문불출
내 집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 믿고 집밖에를 안 나갔다.
처음 한달 정도는 냉장고 파 먹기로 살았다.
두 대의 냉장고 냉동실 냉장실 주방창고까지 없는게 없다.
두 가게가 다 재래시장통이라 이런저런 이유로 먹거리들을 사 주는 경우가 있다보니
건어물부터 냉동식품까지 골고루 다양하게 참 많이도 쟁여두고 있었다.
큰딸식구들을 자주 불러 해 먹였는데도 줄어든 기미가 안 보였다.
내 물건도 팔아야하지만 사 줘야하는 경우가 있어서 음식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다.
그러구러 한달은 있는 반찬 정리를 하다가
두달째부터는 잠깐씩 마트에 나가 그야말로 생필품만 사 들고 부리나케 돌아오곤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는 코로나와 싸우느라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긴했다.
그래도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몇시간씩 서지는 않아도 되었다.
가게 물건을 받으면서 어떤 날 받은건지도 모르게 마스크가 몇박스 들어온게 있었다.
큰딸네 좀 나누어줘도 우리 부부가 쓰기에 넉넉했다.
한창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겪을 때 안도의 숨을 고르며 왠지 미안하기도 했다.
가게 문을 닫은지 석달
그 동안 여러차례 가게 문 언제 열거냐고 문의가 들어왔지만 초지일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가게 문 열거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버티기 석달
가게 월세만 석달째 생돈을 내고나서야 열흘 전부터 문을 열었다.
이 곳에 확진자가 안 나온지 꽤 오래됐고 다른 가게 다 열었는데
우리 가게만 셔터가 내려져 있다면서 바리바리 전화가 와서 못 이긴 척 가게 문을 열었다.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 단골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마땅하게 쉴 공간이 없었던 터라 그분들한테는 더 없이 반가운 개장이었다.
겨울 끝자락에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매장에는 아직 겨울 옷이 걸려 있었다.
대구에 가서 봄옷으로 물건을 해 왔다.
두꺼운 패딩이며 기모가 짱짱했던 두꺼운 옷을 다 걷고 화사하고 밝은 옷으로 매장을 바꿨다.소품정리도 마치니 홀가분하면서 우울했던 기분까지 확 날려보낸 기분이다.
석달을 백수로 지냈는데 백수과로사라고 쉬는 동안에 할일이 너무 많았다.
집공사 뒷정리며 잔디밭만들기며 화단까지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을 하느라고 매일 8시간 이상씩을 마당에서 살았다.
얼굴은 새카맣게 탔고 일할 때 입던 바지는 색이 다 바래서 두개나 버렸다.
등산화 두켤레도 밑창까지 다 닳아서 버렸다.
누가 시켜서 이런 중노동을 했더라면 도망을 갔지싶다.
공사를 마친 수십미터 집 앞 하천 둑에는 수백포트의 꽃잔디를 심었다.
엄청나게 많은 야생화씨앗을 훌~훌~ 흩뿌렸다.
경주에 사는 막내오빠가 받아 준 오색코스모스며 금계국 붓꽃 매발톱
러시아에 있는 둘째가 작년에 사다 준 꽃씨를 산이며 하천 둑에 이리저리 참 많이도 뿌렸다.
하천 둑은 내 땅은 아니지만 다리를 건너 우리 집에 들어오려면 오며가며 보이는 길이다.
또 우리 마당하고 경계되는 구간도 있어 우리 마당처럼 보이는 땅이라 욕심껏 꽃씨를 뿌려놨다.
2~3년 지나서 그 하천 둑이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는 꽃길이 되는 상상을 하면서.
2층 다락방에서 보면 하천이 강처럼 보인다.
전에는 좁은 하천이었는데 새로 공사를 하면서 하천 폭을 많이 넓혔다.
비가 좀 내리면 강처럼 보인다.
길이도 꽤 긴 하천 둑이 마치 강변 산책로처럼 좋다.
그 긴 둑길을 손녀딸 둘이랑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남편모습이 그림같다.
깔깔대는 손녀들의 웃음소리와 애들을 조심시키는 남편의 목소리가 평화롭다.
나는 코로나로 수입이 전무했다.
오히려 가게 월세만 석달치 생돈을 날렸다.
그래도 산 입에 거미줄은 아닌가 보다.
어려운 중에서도 아직은 회복기에 있는 남편한테 적당한 일거리가 있어서 취직이 되었다.
출근시간도 오전 9시라 넉넉하고 퇴근시간도 오후 3~4시라 여유롭다.
무엇보다도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이 아니라 하게됐다.
가게 수입이 전무한 상태가 석달이었으면 참 힘들었을건데
그래도 남편이 취직이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 .
기존에 나가던 지출은 뻔한데 수입이 한푼도 없었더라면?
아찔하다.
참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슬기롭게 이 위기를 이기려 한다.
우리 집만 어려운게 아니잖은가.
야생화며 잔디밭이 주는 위로가 크다.
아이들이 집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설날 용돈을 제법 두둑하게 준게 있었다.
그 돈은 일절 살림에 안 쓰고 화단 꾸미기와 꽃 사는데 투자하기로 남편하고 합의를 봤다.
가게 문을 계속 열었더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코로나로 뜻하지 않은 긴 휴가를 얻었기에 가능했다.
큰 거 하나를 잃고 다른 큰 거 하나를 얻은 셈이다.
요즘은 문득문득 나는 참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걱정스럽고 힘든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좋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오래 전부터 소원하던 큰 꽃밭도 생겼고 너른 잔디밭도 만들었다.
작지만 아담한 비닐하우스도 생겨서 겨울에도 갖가지 채소반찬 걱정을 덜었다.
자연석을 원없이 모아다가 화단을 꾸미며 조용한 행복에 나도 모르게 빙긋 웃는 날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