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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씨와24시간


BY 귀부인 2020-04-02

삼식씨와24시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작은 수퍼나 약국(며칠전엔 은행문도 열었다)  
이외엔 통행이 금지되어 집에 갇혀 지낸지 벌써 2주가 넘었다.
통금이 실시되기 전에 이미 수퍼에 들러서 기본 생필품들을 준비해 

두었던터라 먹고 사는데는 그닥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채소와 과일은 다시 살 수 밖에 없어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수퍼, 
내가 좋아하는 '자이트 앤 자타르' 로 갔다. 열흘 넘게 창밖으로  
내다 보기만 했던, 차 한대 다니지 않는 도로를 느긋하게  가로질러
수퍼에 도착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지어 수퍼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갑갑증이 났었겠지만,오랜만에 

이른 아침의 적당한 온기를 품은 햇볕을 온 몸으로 맞으니 왠지모를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내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수 보다 내 뒤로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수가 
더 많아질 즈음 수퍼 문이 열렸다.
1시간여를 기다려 오랜만에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보니 자꾸 욕심이 생겨, 남편과 나 둘이서 먹기엔 지나치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내 몸은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양손 가득 비닐봉지에 가득 찬 
야채와 과일들을 사들고 마치 개선 장군이나 된듯 수퍼를 나섰다. 

하지만 나의 이 건강한 아줌마 팔뚝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무게가 내 팔과 

어깨를 땅으로 끌어 잡아 내렸다. 

평소 느긋하게 걸으면 10분 거리의 내 집이 얼마나 멀게 느껴지던지.... 
덕지덕지 욕심 가득한 내 마음의 무게까지 보탠 비닐 봉지들과 씨름하며 , 
걷다 쉬다를 반복한 끝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몽글몽글 맺힌 이마의 땀방울을 닦을 겨를도 없이 텅텅 비어있던 냉장고의 
야채와 과일 칸을 그득하게 채우고 나니, 얼마나 간사한지 조금 전에
욕심부린걸 후회하던 맘은 간곳이 없고 오히려 뿌듯하니 맘이 
편안해 진다.


통금 이후 재택 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우선 과일 한 접시를 내어주고, 
부실하게 채려준 아침 식사가 미안해서 점심 준비를 한다. 


통금으로 인해 남편이 재택 근무를 한다고 했을때,마음으로 각오를 하긴

했지만 하루 24시간 같이 있으면서 세끼 밥을 꼬박 차린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를 않다.


요르단의 집 구조가 거실이 두 개라 남편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큰 거실로 
출근(?)을 한다. 햇볕이 잘 들고 인터넷 속도가 빠른 큰 거실은 평소 
나의 활동 무대인데......
가끔 보는 TV 드라마 시청도,청소기로 왕왕 소리내며 청소하기도 
힘들어졌다. 가끔 남편이 화상회의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뒤꿈치 살짝 들고
걷게 된다.


하지만 이런것 쯤이야 불평거리가 못된다. 문제는 삼시 세끼 밥이다. 
평소 한번 식탁에 오른 반찬은 두번 다시 잘 먹지 않는 남편의 식습성을 
잘 알기에 매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하는게 쉽지가 않다. 


뉴스를 보니 재택 근무로 인해 이혼율이 높아지고,아이들 개학이 늦어져 
아이들 돌보랴,간식에 돌밥(돌아서면 밥), 돌밥 하느라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나야 남편 혼자만 챙기면 되니 불평할 거리도 못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자재가 풍부하지 않은 이곳 요르단에서  
매끼니 다른 음식을 한다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이도 남편이 무슨 음식을 하던 맛이 있네, 없네 잔소리 하지 않고, 
처음 일주일과 다르게 반찬 가짓 수가 한 두개 줄어도,  일품요리로
떼워도 아뭇 소리 하지 않는다.  


지난 주말엔 남편이 먼저,
"우리 주말 만이라도 세 끼말고 두 끼만 먹을까? ,주말엔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아점으로 먹고, 저녁은 조금 일찍 먹고...."
우와!! 이런 기특한 말쓰믈....!


이번 주말엔 두끼로 한번 지내볼 생각이다.


문득 아주 오래 전 학창 시절에 읽었던 톨스토이의 '세가지 질문' 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 떠 오른다.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가장 중요하게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왕의 세가지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있는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나와 함께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는 답을 준다.


재택 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때론 그의 김비서가 되어 차나 커피, 과일들을 
대령하고, 삼시 세끼 다른 음식을 해내고, 24 시간 함께 지내는 시간이 좀  
갑갑하고,익숙하지 않아 힘들지만, 어쨋든 나는 가장 소중한 지금 이때에 ,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이고,남편을 위해 하는 일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처럼 잠시가 아니라 언젠가 은퇴후 진짜 삼식씨가 될 남편과 함께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란 생각도 해본다.


그나저나 이번 주말엔 24시간 완전 통금이 실시 된다하니 괜히 마음이 더 
답답해져 온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도시 전체가 극히 일부를 빼고 통행 제한이 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조금씩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 통금에서언제 자유함을 얻을지 기약이 없다. 마비된 도시와
사람들의 일상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백신이 개발되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 퇴치될 날이 속히 오길 기도해 본다. 


아,그런데 점심밥 먹은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아마도 나는,오늘 저녁은 

또 뭐해 먹지하는 생각을 할것 같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