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81

미친 짓


BY 그대향기 2020-02-17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것도 미친 짓이고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것도 미친 짓이고
나이들어서 집 평수 늘이는 것도 미친 짓이라고.

그런데 그 미친 짓을 나이 60에 하고 말았다.
세번째 미친짓 집 평수를 늘인거다.
지금 남편하고 별거 아닌 별거를 하느라 집이 두채다.
남편이 기거하는 집은 그나마 최근작이라 괜찮은데
안채에 문제가 좀 있었다.

지은지 30년이 다 된 빨간벽돌 집인데
시댁으로 우리남편이 세째 아들인데도 부모님을 모시게 되었다.
27년 전 쯤에 우리가 사는 시골 땅 600여평을 사고
그 터에 23평 작은집을 지어 시어른들을 모시게 되었다.
나머지 땅에는 소를 키우고 텃밭을 일구시며 시어른들이 사셨다.
그 때는 우리 애들 셋도 다 어렸고 남편도 아팠을 때라
형편도 넉넉지 않았고 근사하고 큰 집을 지어드릴수가 없었다.

땅을 사면서도 은행융자를 얻어야했고 크는 애들 공부시키면서
그 돈을 갚느라 꽤 여러해 동안 힘들었다.
시어른들이 25년 쯤 그 집에 사시다가 아버님의 고향 부산으로 가시고
직장 때문에 우리가 당장 못 들어가고
몇년 세를 주고 있다가 3년 전에 우리가 이사를 했다.

그 때 기초를 약하게 한 탓인지 바닥에 습기가 차는게 보였다.
처음에는 약간 흐릿하게 보이더니 장판에 제법 큰 얼룩들이 보였다.
뒤에는 산이고 앞에는 하천이 흘러 배산임수의 멋진 명당 터라고 했는데
기초가 약한 지반을 타고 조금씩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장판을 새로 깔고 도배지를 새로 발라도 바닥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를 주다가 내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2천만원 조금 넘게 들여
리모델링을 하면서 창문이며 도배장판을 다 새로 했는데
바닥공사는 안했었다.
씽크대를 갈면서 시공하는 기술자가 사모님 벽에 습기가 좀 많네요..해도
괜찮겠거니..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벽이 문제가 아니라 바닥이 문제였다.
뒷산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수로를 따라 흘러도 갔지만
약한 기초바닥을 뚫고 오랜 세월을 조금씩 조금씩
주방 바닥을 타고 들어왔던 거 였다.

주방바닥을 뜯고 공사를 하자니 너무 큰 공사였다.
거실까지 뜯어야 하는 대공사라 난감했다.
남편하고 여러 날 고심끝에 내린 결과
당신이 그렇게 갖고싶어하는 다락방이 딸린 집을 하나 더 짓자.
인생 뭐 있어~?
우리가 살면 몇백년을 살겠어 수천년을 살겠어?

까짓거  한채 더 짓는다고 우리살림이 거덜나겠어~!
오늘부터 당장 설계도 그려봐  당신만을 위한 집을 지어줄께.
당신 나 만나서 고생만 했는데 그까이꺼 복층 딸린 2층집 지어주께.
그 대신 나머지 인생에서 당신 명품백이나 보석반지는 없는걸로.
그 집은 당신 60살 생일 선물이다.

그렇게해서 나는  수백장의 설계도를 그리고 또 그렸다.
밤에 그려 놓으면 아침에 또 수정을 하고
인터넷이나 유투브에 리모델링한 집이나 신축을 보며 참고도 했고
어릴적 부터 그렸던 내 소중한 공간 다락방을 갖게 되었다.
나이들어 집 평수 늘이는 것도 미친 짓이라 했지만 우리 부부는
현금을 탈탈 털어서 행복하게  그 미친 짓을 감행했다.

기존의 빨간벽돌집은 주방시설이며 도배장판이 거의 새것이라
창고처럼 주방집기들을 보관하거나 큰 짐들을 보관하기로 했다.
보일러도 잘 되고 채광까지 좋은데...
그래도 인생 60부터라고 했는데 새집에서 더 나은 생활을 하며
우리 당대에 실컷 즐기면서 살자주의가 남편의 바뀐 인생철학이다.

크게 아프고 난 후 남편의 생활철학이 많이 변했다.
너무 아등바등 아끼지만 말고 맛있는 것도 자주 사 먹고
눈이 시리도록 날씨가 좋으면 바람도 쏘이러 가고
다 큰 자식들 걱정말고 우리 둘만 잘 살자고.
공부 다 시켜 놓은 자식들 이제 제 갈길은 스스로 알아서들 가라고.

부모가 재산이 없는 줄 알면 스스로 강해질거라나?
우리도 부모님한테서는 단 한푼도 물려 받은게 없었다.
한푼도 안 물려주신 부모님을 모시긴 했지만.
어쨋든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이제부터 편백나무집에서 쾌적하게 잘 살 일만 남았다.

편백나무로 뾰족지붕을 만들었고
천장에도 서까래며 대들보와 벽체를 편백으로 했다.
4평 남짓한 3층의 복층 다락방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방이다.
물론 거실이며 주방도 내 전용공간인 셈이다.
남편은 별채에 따로 기거를 하니까.

운동실에는 런닝머신이며 자전거타기 노르딕 꺼꾸리 아령
허리벨트 근력기 하체단련기며 여러가지 운동기구들이 다 갖춰져 있다.
음악을 들으며 운동할 수 있게 오디오시설도 갖추었다.
건강을 크게 잃어 본 남편은 운동시설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자기도 자기지만 나도 관리 잘 하란다.

멋진 벽난로를 사러 한밤중에 경기도까지 날아가는 열정을 보인 남편이다. 
내 생애 두번 다시 또 집 지을 일이 있겠냐며 세심하게 신경을 써 준 남편
나는 그 동안 모아뒀던 골동품이며 소품들을 적당한 자리에 배치했다.
인테리어에 큰 돈을 들이진 않았고
수십년 동안 모아뒀던 애장품들을 적당하게 뒀더니 제법 그럴싸하다.

마당 공사를 하면서 연못자리도 팠고
하천공사를 하면서 나온 자연석으로 대충 모양을 냈더니 자연스럽다.
사람을 안쓰고 무거운 돌을 들어옮기느라
둘이서 낑낑댔더니 허리며 팔다리가 몸살을 한다.
봄이 오면 연못 돌틈사이로 패랭이며 꽃잔디를 심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집 앞 너른 하천 뚝에는 데이지와 야생화 씨를 훌훌 뿌릴 참이다.
잡초와 싸우며 저절로 피어 활착하라고.
몇년이 지나서 그 긴 뚝에 야생화가 만발하기를 .
대문이 따로 없는 마당입구에는 키가 큰 해묵은 능소화도 심을 예정이다.
멀리서도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가 환하게 보이도록.

지금 이 글도 내 다락방에서 적는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
눈발이 날리면 바로 내 눈 앞 창가에 까지 찾아드는 곳
누워도 밤하늘의 별들이 내 품에 안기는 곳.
멀리 길 건너 도로에 달리는 차들의 긴 꼬리가 아름다운 곳.

미니멀라이프하고는 거리가 먼 생활이고
그럴기회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겠지만
벼락부자가 되거나 엄청 큰 액수의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어릴 적 읽었던 소설 속의 작은 성을 사서
멋진 정원을 가꾸며 근사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살고팠었다.

소설 속의 그 작은 성은 아니지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아늑한 다락방과
아침햇살이 잘 드는 기역자 넓은 주방과
남쪽으로 난 넓은 통창으로 거실에 가득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조리를 하면서도 다리를 건너 아이들이 타고 들어 오는
빨간 승용차가 보이는 내 작은 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