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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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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BY 이루나 2019-12-23

추석을 지나고 한적한 날을 잡아 동무와 함께 추억여행을 갔다.
어릴 적 함께 살던 곳을 더듬는 여행 중에 우리가 이웃해서 살던 집과 동네를 찾아가면서 무려 반세기 전의 집이 아직 있을까 궁금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신작로를 뛰어다니던 단발머리 코흘리개의 내 모습이 상상되어 감정이 말랑해졌다. 먼저 우리 집을 찾아보았다. 50년 전의 기억이 실타래처럼 끌려 나와 가슴속을 맴돌았다. 옆에 있던 친구가 자기가 살던 집은 어딘지 못 찾겠다며 내게 찾아 보라 한다.
우리 집에서 나와 커다란 느티나무를 끼고돌면 있던 친구의 집이 당최 가늠이 안 됐다. 나는 4학년이 되면서 그곳을 떠났고 친구는 5학년 때 이사를 했다고 하였다.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더니 아저씨 한 분이 다가오며 어디를 찾느냐 묻는다.
설명을 하자 여기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는 없어졌고 저 위에 있던 두레박 샘도 없어졌다 한다. 여기서 오래 살았냐는 나의 물음에 바로 뒤에 있는 자신의 집을 가리키면서 자신은 여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여기서 살고 있다기에 실례를 무릎 쓰고 나이를 물으니 우리보다 한 살 위다. 그렇다면 좁은 골목에서 함께 놀았을 텐데 친구도 나도 기억이 없었다. 아저씨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럼 혹시 그 집의 아들이 죽고 이사 간 거냐 묻는다. 깜짝 놀란 친구가 그걸 어찌 아냐 물으니 토박이가 그걸 모르겠냐며 구구절절 사연을 이야기한다. 친구네는 기역자집에 안채에는 외가가 바깥채는 친구네가 살았었다. 어느 날 친구의 외숙모는 외삼촌이 바람이 났다며 의심을 했고 남편의 근무지로 찾아갔는데 때 마침 여직원과 다정한 모습으로 라면을 끓여서 함께 먹는 장면을 목격했고 화를 참지 못한 외숙모가 사람들 앞에서 패악을 부렸단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외삼촌이 “나는 창피해서 더는 못 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헛간에 잠시 머물렀다 나갔는데 밧줄을 들고 앞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돌아가셨더란다. 아들을 잡아먹었다는 시어머니의 성화와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에 다른 곳으로 이주를 결심한 외숙모가 이사를 가면서 아들을 전학시키려 하자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린 아들이 전학 가기 싫다며 울고불고 하더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삿짐 차가 오고 이삿짐을 모두 싣고 출발할 때까지 아이가 나타나지 않자 전학 가기 싫다고 울더니 숨었나 보다 생각하고 먼저 가서 짐 정리를 마치고 며칠 내로 데리러 오겠다고 하며 친척들에게 아이를 돌봐 달라 부탁하고 다른 가족들만 먼저 떠났단다. 해가 이슥하도록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어른들이 찾아 나섰고 뒷산에서 목매어 죽어있는 아이를 발견했단다. 초등학교 1학년이 전학 가기 싫어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경찰의 수사 결과 자살이라고 하니 도리가 없더란다. 아버지는 앞산에서 아들은 뒷산에서 그렇게 되고 나니 친구의 엄마도 그 집이 싫어져서 이사를 한 것 같았다. 50년 전의 이야기를 생생히 기억하는 아저씨를 뒤로하고 돌아오면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섬뜩했다.
졸지에 남편과 아들까지 잃고 울산으로 간 외숙모 역시 얼마 후에 밭에서 어둡도록 일하던 중 지나는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돌에 맞아서 유명을 달리했다 한다.
한순간의 오해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 되어 일가족이 참화를 당한 것이다. 친구가 왜 그곳을 떠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었는지 그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외숙모가 오해를 했던 것 같아 외삼촌이 바람이 났었다면 안 죽었겠지 바람이 안 났는데 망신을 당하고 나니 억울한 마음에 그랬을 것 같아” 오래전 폭풍처럼 지나간 비극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다스러운 사람들의 말장난으로 시작된 오해가 무서운 비극으로 끝난 친구 외가의 아픈 가족사가 애달프다.
누구라도 말을 만들어 내는 나의 입을 경계해야 한다. 말이란 것이 한 입을 건널 때마다 무섭게 덩치를 불린다. 얼마 전 자살한 설리도 사람들의 말이 원인이라 했다.
최 진실도 그렇고 우리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말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었다. 이런 일이 일이 생길 때마다 반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고 잊힐 때면 사람들은 다시 말장난을 시작한다.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에 더 흥분하고 자기 마음대로 편집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빛 도 갚는다고 했다. 말 한마디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크나큰 상처로 남아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사소한 진리가 실천이 어렵다. 살다 보면 그때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는 대목이 꼭 있다. 혹시 나도 오해로 또는 재미 삼아 하는 수다로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나? 그날 이후 가끔씩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