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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의 뒤안길에서 ...


BY 가을단풍 2019-12-13

    만학!
육십살
대학교 2학년
이제  이 모든것들이 새롭지 않다.
그러나  간간히 웃음을 보일때가 있다.

울엄마 회갑 나이에 나는 전문대를 졸업한다.
흐흐 ....
조금 어이가 없어 괴물 괴물 웃어본다.

  병석에 계신 울 아버지가 끙끙대며 딸이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사셔야 한다고 안간힘을 쓰신다.
에구 아버지 병수발 이나 잘 들을 일이지 지금 뭘 하겠다고 학교를 다니는 건지 원. 가끔씩 어이가 없을때도 있지만 내가 가는길 뜻을 세웠으니 그냥 길을 갈뿐이다.

  즐거움도 많았다.
캠퍼스를 즈려밟고 걷는 기쁨도 좋았고, 교수님과의 적절한 인간관계도 너무 너무 좋았고  교우들의  열띤 웃음도 너무 좋았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내가 이 나이에도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내가 아직 젊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마음 수정을 해놓고 내 젊음을 과시했다   "늙은 나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이야"
당연히 머리는 딸렸다. 그것도 상당히 딸렸다. 건강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극복을 해야했다.
 나름 학력 컴플랙스 플러스되고, 내가 봉사활동을 하다가 왕따가 된 사연하며, 종갓집 맏며느리 생활하면서 눌려있는 스트레스로 부터 탈출이었다. 공부가 아무리 힘들어도 다 참을수 있었다. 시험보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사회생활속에서 왕따가 된 사연보다 훨, 쉬웠고 종갓집 맏며느리 노릇하기보다  쉬웠다.
물론 심험 스트레스는 있다.
이는 내가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일뿐이다.

  지난 학기에 여러모로 어려움이 더 많았다.
함께 공부하던 학우들이 교수님 교수법이 까다롭고 ,시험이 보기에 힘들다는 평이돌아  다른 교수님 수업으로 바꿔버렸다.
   "언니, 언니 언니도 바꾸자. 좀 헐렁한 교수님 수업으로 바꾸자.."
그러나 나는 한번 결정한 것은 큰 사정이 없는 한은 바꾸지 않는다.
교우들이 얄미웠다. 혼자 내버려두고 모두 내뻐버리다니.......
  " 늙은이가 참  가지가지 한다 쉽게 좀 살어."하며 눈을 흘겼다
그러나 쎈플수업을 받아보니 교수님들 수업이 너무 좋았다. 까다로운 만큼 개성도 있고 카리스마있는 강의법에 감동을 받고 말았다. 나는 여기 남아서 공부할라요 이 "늙은이 독고 타요  잉~"
지난학기 그렇게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를 보고 까무러칠것 같았다. 교수법이 깔끔하고 정돈이 탁탁 잘 된다고 시험이 그렇게 깔끔하고 단순하게 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것도 오지 선답 시험문제 출제는 나를 정말 혼돈하게 만들었다. 교수님 왈 ~ 국가고사가 오지 선답이니까 적응하슈~

그렇게 시험을 맞치고 완전 페닉되고 말았다.
나름 공부를 할만큼 했다. 눈뜨면 공부하고 조금자다 공부하고 살짝 쉬었다 공부하고 .... 나를 이겨야 한다는 심정으로 공부를 했것만 시험지를 받아드는 순간 모든 개념이 한데 엉켜버린 것 같았다. 그게 그거 갖고 차라지 주관식이나 서술이 더 쉬웠다. 객관식 다섯문항중에 한놈을 골라 내는 것은 정말 아리까리 했다..
아 ~ 정말 실망했다. 내가 이렇게 머리가 나뻣구나. 하긴 뭐 내가 머리가 좋았으면 이 나이에 공부를 하겠어.
남편을 원망했다. 왜 말리지 내가 학교다닌다고 할때 말리지 왜 안말렸느냐고 두덜거렸다.
 
  딸에게 하소연 했다.
"엄마 죽을 것 같어. 딸이 깔깔 웃었다. 아 -꼬셔. 아  - 꼬셔라  ~ . "어쩐지 울엄마 잘 나간다 했더니..."
"엄마 파 파 파야지 죽지 않을 만큼 파 . 덜파서 그렇치."
그래서 기말고사 때는 아주 도서관에 들어앉아 파고 들었다. 파고 또 파고 또 파고 ............
머리가 나쁜 사람은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을 알겠다.
 "하이 공부 참 징글 맞게 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주에 기말고사를 끝냈다.

  시험지를 제출하는 순간 교수님께서 오우 ~ 굳 ~하시면서 엄지 손가락을 살짝 올리셨다. 교수님께 살짝 눈인사를 남기고 책가방을 챙기는데 학우들이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슬슬 지나면서 해답을 꾹꾹 찍어줬다.
그러나 서술은 찍어줄수가 없었다.
푸 하핫 ....
 
  아 ! 나는 취했다.
나는 사람이 술에만 취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학문에도 취한다는 것을 알았다.
만학의 길에서 이런 저런 여려움이 많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어가면서 새로운 인생이 열리어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나와서 공부를 하던 도중에 왕따로 휘몰렸던 사건들도 다 순조롭게 마무리되고 비온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그동안 쌓아놓았던 정예가 있는 터가 내가 구설로 몰릴수밖에 없던 사연에대해서 이해를 하게 되었기때문에 오히려 봉사활동을 하던  회우들과의 관계는 더욱 더 돈독해졌다.
 
  아 참! 지난 학기에는 장학금도 탔는데 ...
아! 예뻐 너를 칭찬해....쓰담 쓰담 애 썼어 정말 애썼구나 ...히히히 .......
아 ! 좋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종갓집 맏며느리 자리는 여전히 힘들게 고수하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흔들리지 않은 바위같은것이었다.
큰 바위와 같고 큰 산과 같아서 흔들수가 없었다.
세 학기 대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것은 바위를 흔들려 하지말고, 산을 흔들려 하지말고 그냥 조용히 놔두는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대가족의 본성을 그냥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문득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양쪽 바위옆으로 길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랑 살랑 길을 내고 그곳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어가면서 노래까지 부르는 나를 발견하였다.
이번주엔 방학이 된다. 그동안 못했던 부모님께 마음을 나누어 드릴 예정이다. 물론 아이들도 간간히 돌아보고 말이다.

  "울 남편!"
"우리 마누라는 학생이다 . 공부해야 된다. 하고 많이 봐주면서 은근히 즐기고 있다. 이 사람은 원래 내 남편이기 보다는 우리 시에  시민에 더 가깝다. 어찌 그리 찾는데가 많은지 영식이 된지가 오래되었다. 아마도 내가 공부를 할수 있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긴다면 산다는 것은 모든것이 극복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