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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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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은 행복입니다


BY 만석 2019-10-02

고마움은 행복입니다.

내 며느님에게는 늘 여유분의 화장품이  있다. 그렇다고 괜시리  사서 쟁겨놓는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선물이나 답례품으로 건네 받은 것 같다. 기초화장 외에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그녀로서는, 아마 처치 곤란일 때도 있지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딸아이와는 이름이 다른 며느님이라,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없다. 저도 나누어 써야할 친구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지.  또 혹여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라치면, 사서라도 들고  올  위인이질 않은가.  

스킨을 담은 병이 이제는 더 이상 뱉어 내지를 않게 되어 거꾸로 세워서 손바닥에 탁탁 두드리고 있는데, 마침 며느님이 올라온다. 내 하는 양을 보고는 쌩긋이 웃으며,
"이제 다 쓰셨나 봐요. 안 나오네요."한다. 
"그러게 말이다. 왜 로션보다 스킨은 언제나 먼저 떨어지는지." 무안한 생각이 들어 공연히 구시렁거려 본다.

저녁을 시작하려는데 며느님이 다시 올라온다. 
"이거 쓰셔도될까요?"
그녀가 내민 제법 큰 종이 쇼핑백에 담아 온 화장품은, 스킨 외에도 로션, 영양제, 주름제거제, 노화방지용 화장품 등이 들어 있다.  동일한 메이커가  아닌 것으로 보아,  일부러 구매한 것은 아닌성 싶어 안심이다.

"뭘 이리 많이 가져왔어?"
"어머님 피부에 맞으실 지 모르겠어요."
"난 화장품은 가려서 쓰지 않아도 괜찮아."
아닌 게 아니라 아무런 메이커의 화장품이라도, 거부하는 법이 없는 내 피부다. 곱지는 않아도 고마운 일이다.

쭉~ 일렬로 세워놓고 보니 예전과 다르지 않게 각각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스킨>, <로션>, <영양제>, <주름개선제>, <노화방지>.라고 커다랗게 쓰여진 스티커들.  다르다면 각각의 화장품에 예전처럼  <사용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세안 후에 골고루...'라든지 '취침 전에 기초화장 후에 바르고 맛사지하듯... '하는 메모를 잊지 않았었는데. 아마 이쯤이면 그런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여기나 보다.

벌써 몇 년째이지만 처음엔 좀 난감했다. '나도 이런 것쯤은 알아서 읽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가 있는데....'싶었다. 못 된 시어미의 근성이었지.  혹시 누구라도 보면, '저런 걸 꼭 써 줘야만 하는가'할까봐서, 잽싸게 스틴커를 떼어내곤 했었다. 그러나 그게 작은 글씨에 어려움이 생긴 시어미의 시원찮은 시력에 대한 배려라는 걸 알고는, 나는 무릎을 쳤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닌가 말이지.

공짜를 싫어하는 내  고약한 성미가 발동을 해서, 약간의 값을 지불하려하지만 극구 사양한다. 다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알아차리고 는,
"저도 그냥 생긴 건데요."라던지, "저도 쓰지 않는 건데요, 뭘."한다.  그냥 받아써도 나무랄 사람 없으니 챙겨넣어도 좋으련만. 곧은 그녀의 성품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내 화장품엔 언제나 파란 스티커들이 정갈하게 붙어 있다. 화장품을 개봉하면, 나는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병으로 옮겨 붙인다. 예쁜 그녀의 마음을 길게 기억하고 싶어서 이다. 가끔 그 스티커의 존재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의 섬세한 마음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특히 내 아이들에게는 어미를 향한 그녀의 효심이 읽혀서, 무언의 '산교육'이 되지도 않겠는가.

나는 화장품을 꺼내어 쓸 때마다,  내 며느님이 책상에 엎디어  예쁜 고갯짓을 하며  스티커를 채우고 있는 그림을 그린다. 내 글에 혹자는 '자랑질'이라 할 수도 있겠고, '모든 며느님들도 다 그리 한다.'고 면박을 주는 이들도 있겠다. '어디 얼마나 가나 보자.'는 시기의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다. 내 안에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만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녀는 내 아들이 끔찍히도 사랑하는 소중한  단 한  사람이니까.
 
고마움은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