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많아서 좋은 것은 별로 없다.
묻는 말만 대답하는 자녀와 단답형인 남편 말 없는 남동생에 과묵한 올케까지 둘러보면 다들 말이 없는데 항상 내가 제일 수다스럽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주말에 조양리의 어머니 집을 방문 할 때면 나 혼자 수다를 떨 때가 많았다. 늙으신 어머니는 뭐가 그리 궁금하신지 모든 대화를 놓치지 않고 물으시고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내가 대답을 하는데 그러자면 앞뒤를 길게 설명해야하고 귀가 어두워서 몇 번씩 설명해야 한다. 어느 땐 나도 슬며시 피하고 싶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오래된 아파트이다. 처음 입주 때부터 사시던 분들 중에 연로 하신 분들이 많다. 가끔 외출하다 로비에서 마주치면 “ 어디가” 묻는다. 날마다 행선지가 틀리니 일일이 대답하기 힘들다. “ 예 어디 좀 가요.” 라든가 피식 웃기도 하는데 한번은 김치 통을 들고 나선 길이었다. 어디 좀 가요. 라는 대답에 그건 뭐야 묻기에 김치 좀 담았어요. 하자 어디 갖다 주게 한다. 네 올케 좀 가져 다 주려 구요. 하는 대답에 올케가 어디 사는데 하시기에 다리건너요. 다리건너 어디 살아? 롯데 케슬 이요. 무거운 김치 통을 들고 이렇게 로비를 통과했다. 내가 좋은날은 다 좋다. 그러나 내가 안 좋은 날 이러면 아주 싫다. 그렇다고 얼굴에 나 안 좋다고 써 붙일 수도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길게 대화 하지 않는다. 톡에서 ㅇ은 응이 되고 ㅇㅇ은 응 알았어가 된다. 내가 길게 적어 놓았는데 상대가 ㅇ 만 달랑 보내오면 섭섭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말을 아끼는 올케 때문에 화가 났었다.
재작년에 올케 친구가 하던 샵이 문을 닫으면서 새로 산지 6개월 밖에 안 된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갖다 쓰실래요? 묻기에 그러마고 하며 용달차에 3만원을 주고 싣고 왔다. 음료수나 간단한 걸 넣는 용도로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물건이란 게 있으면 있는 대로 채우는지 식구 둘에 냉장고 세대가 꽉 찼다. 한 달 전쯤 이었다. 올케가 전화를 해서 그 냉장고 제가 다시 갖다 쓰려 구요. 하길 레 “응 뭐 ? 자네 혹시 다시 뭐 하게” 물으니 아니란다. 그럼 집에서 쓰게 했더니 그도 아니란다. 그럼 왜? 하니 누구 좀 줄려고 그런단다. 알았다고 하고 다음날 비워 줄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화가 확 났다. 날씨도 더운데다 안에 물건이 너무 많았다. 냉장고를 닫아 버리고 전화를 걸었다. 뭐가 너무 많아서 비우기가 그러네 하자 그냥 두세요. 하는데 목소리가 영 별로다. 하루 종일 찜찜하게 있다가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에라 ~ 이 확 비우자. 마음먹었다. 그 작은 냉장고에 뭐가 그리 많은지 비워내니 양이 엄청나다. “ 냉장고 비워놨어 언제든 가져가 ” 톡을 넣었더니 제가 괜히 얘기 했나 봐요 더운데 고생 하셨어요.ㅜㅜ“ 하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며칠 후 내일 가지러 갈게요. 톡이 오더니 또 소식이 없다. 사용하지 않는 걸 두고 보니 영 별로였다. 남동생과 통화할 일이 있어 용건을 끝내고 냉장고는 언제 가져가는지 묻자 아 그거 한다. 알고 있다는 거다. 내용을 묻자 어린이집을 10년 넘게 운영했던 올케가 작년 말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고 집에 있었는데 다시 뭔가 해보고 싶어서 화장품 샵을 오픈 하는데 거기서 쓸 거란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을 했으면 오해도 안 할걸 앞 뒤 다 자르고 짧게 누구를 주게요. 하니 사용하는지 뻔히 알면서 그러나 싶어 서운했지 그런 내용이라면 내가 사줘도 사줄 텐데 말을 했어야지 제발 묵언수행 그만하고 대화를 하세! 했더니 동생도 웃는다.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루 종일 말을 해도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도 있고 몇 마디 안했어도 많은 말을 한 것 같은 느낌으로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줄임말도 좋고 짧은 말도 좋지만 상대가 납득이 되도록 설명을 해 준다면 오해로 인해 사이가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우님 좋은 말로 짧은 대화 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