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TV에서 저장 강박증을 앓는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대부분이 할머니들 이었다. 쓰지도 못할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고 자신은 최소한의 공간도 갖지 못한 체 살아간다.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올해 초부터 어쩐 일인지 매사에 의욕도 없고 우울했다. 뭘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우울증을 앓는다거나 그로인해 변덕을 부리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라 치부하고 자신의 감정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 판단하고 싫어했었다. 그러던 나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가 하면 내가 너무 싫어 져서 화가 나기도 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앓느라 힘이 들어서 병원 문 앞까지 갔다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 왔는데 집이 너무 초라한 것이 딱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집도 늙고 물건도 늙고 나도 늙고 모두가 다 늙고 초라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베란다에는 화초는 죽고 화분만 남은 빈 화분들이 켜켜이 쌓여 갔지만 이 담에 큰집을 짓고 이사를 가면 그때 온갖 기화요초를 심어놓고 그림처럼 살아 보리라는 다부진 꿈으로 모아둔 화분들이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채워져 있었다. 안방에는 갓 아줌마 적에 입던 작은 옷들을 언젠간 꼭 입고 말거라며 차곡차곡 보관해 두었지만 이렇게 오래된 아줌마가 되도록 입지 못한 채 쌓여있어 저장 공간 부족으로 몸살을 앓는다. 거실에는 나만큼이나 엔틱 한 물건들이 엔틱미를 뿜뿜 내뿜고 있었다. 나야 말로 저장 강박증이 의심되었다.
다 버리고 깨끗이 정리하자 마음먹고 물건을 내다 버리는데 경비 아저씨가 다가오시더니 화분들을 가리키며 유리는 재활용이 되지만 항아리나 화분은 재활용이 되지 않으니 이렇게 버리면 안 된단다. 비닐포대를 주시며 잘게 깨어서 매립용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면서 하얀색 쓰레기봉투는 타는 쓰레기이고 이건 타지 않기 때문에 파란색 매립용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수거가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부랴부랴 매립용 쓰레기봉투를 구매 하여 쓰레기 분리수거함 옆에서 망치로 내려치는데 땀이 비 오듯 했다. 힘든 와중에 이렇게 깨 부스면서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곳이 있다고 TV에 나오는 걸 본 기억이 나서 남들은 돈 주고도 하는데 하며 속으로 웃었다. 열심히 부수고 있는데 12층 아줌마가 오시더니 무얼 하는 거냐? 묻기에 내안에 있는 화와 싸우는 중인데 아줌마도 한번 해 보실래요? 물으니 웃으신다. 어마 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반나절에 걸쳐 내다버리니 집안이 한결 훤해졌다. 나는 내다 버리니 좋은데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가 태산처럼 쌓여가는 이 땅이 걱정 되었다. 언젠가 필리핀으로 보낸 쓰레기가 되돌아와 국제망신을 샀고 제주에는 처리 못한 쓰레기가 하얀 비닐에 쌓여 하얀 산을 이루었다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유산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낙동강 상류인 경북 의성에는 쓰레기가 거대한 산을 이루었는데 그곳에 불이 붙어 이틀째 타고 있다는 뉴스가 지난 12월에 보도 되었다. 처리비용만 무려 100억이란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해서 지자체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지역 주민들은 악취와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후속 보도도 있었다. 온 나라 구석구석이 쓰레기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관리해서는 아름다운 금수강산 이란 말이 무색할 것이다. 이번에 많은 쓰레기를 내다 버리면서 나 같은 아줌마가 애국하는 일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가장 쉽고도 분명한 애국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태어나면 언젠간 죽듯이 물건도 만들어지면 언젠간 그 수명을 다한다. 이번에 집 정리를 하면서 어떤 물건을 구매 할 때는 그 물건이 버려질 때를 생각해고 구매를 결정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애국 아줌마가 되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관리하는 우리 아줌마들이 가장 확실하게 실천 할 수 있고 최소의 실천으로 최고의 가치를 찾는 쓰레기 줄이기로 우리 모두 다함께 애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