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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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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105) 2018. 12. 20 목


BY 녹차향기 2018-12-20

  류시화시인의 새 수필집을 택배로 받아서 읽기 시작하다가,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이
누군가의 인생의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것을 읽다가 문득 떠오르는 고객이 있었다.
육십중반쯤? 혹은 칠십세 초반 되어보이던 그 남자 손님은 몇몇 지인과 함께 오시기도
하고, 가끔은 혼자서도 식사를 오셨는데 눈가에 자글한 주름과 여유있는 농담을 한번씩
해주곤 하셨는데, 그분의 농담은 힘들고 지쳐있는 나와 우리 직원 모두에게 큰 즐거움을 주기도했었다.  목소리가 우렁차서 작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도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다 웃을 정도로 컸고, 거침없으며 씩씩한 분이셨다.

  그 분은 건설업을 하셨었고, 학교를 많이 지으셨으며 지방 어디어디에 본인이 참여했던
국민학교 건물이 있다고 그랬지만, 가족 관계가 불편해졌고, 아내와 이혼을 했고,
다 큰 자식들은 엄마곁으로 갔고 본인은 혼자 살고 있다고 하셨다.
병이 걸리기 전까지는 몇 번은 직원들 먹으라고 출처가 불분명한 빵도 가져다 주시고,
음료수나 혹은 과일도 갖다주셨었다.
  그랬던 그 분이 뜨문뜨문 방문 횟수가 줄어들고 한동안은  안 보인다 싶었는데, 어쩌다 오실때면 갈수록 얼굴빛이 까맣게 변해서 오곤 했다.

  그리고 어느날인가는, 같이 오시던 지인분이 넌지시 저 양반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그 말을 전해 들으니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곤 아주 한동안 또 안 보였는데  마지막 뵈었던 그날은, 얼굴은 연탄처럼 까매졌고, 복수가 차오른 배는 언뜻 보기에도 저래서 어찌 견딜까 싶을정도로 부어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달려가,
  “한동안 안 보여 걱정했는데, 괜찮으세요??”
하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신다.
  “아, 글쎄 이렇게 배에 복수가 자꾸 차올라 걷지를 못하겠으니, 휴.. 힘들어서..
휴… 먹지도 못하겠고.. 근데 또 먹어야 살 것 같고.. 내 곁에 아무도 없어서
밥도 못 얻어먹어.. “
말씀하시는 목소리도 기운이 하나도 없고, 뼈만 붙어있는 듯 말라버린 몸이
어떻게 병을 이겨낼까 싶어 마음이 초조했다.

  콩나물국밥을 앞에 받아놓고도 드실 엄두가 나질 않는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셨다.
짐짓 모르는척만 하고 있기가 참 힘들었다.
바짝 코 앞에 앉아서는 앞접시에 몇 숟갈을 덜어내고 입으로 바람을 후후 불어 식혀서
자.. 제가 좀 거들어 드릴 테니 천천히 몇 술이라도 떠보세요..하고 손에 숟가락을
쥐어 드렸다.  눈물이 그렁그렁 하시며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하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신다.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몇 숟가락을 드시면 또 내가 앞접시에 불은 콩나물국밥을 떠서 덜어 후후 불어서
숟가락을 쥐어 드렸다.  몇 번을 더 드시고는,
“너무 먹고 싶었었어.  이제 속도 좀 든든하고 힘이 나네..”
이렇게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

  식사 몇 숟갈에 얼굴빛도 달라보이고 기운이 좀 나는 듯이 느껴졌다.
“내일은요, 저희가게 바로 앞에 저 삼계탕집 보이시죠?  저기가셔서  흐물흐물하도록 오래오래 닭을 고아달라고 하셔서 닭 살과 죽을 좀 드세요.  콩나물만 가지고는 힘이 안나니까,  내일도 꼭 힘내셔서 나오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그래.. 내일은 운동도 할 겸 슬슬 걸어나와  닭 죽 꼭 먹을게.. 그런 것 쯤은
내가 혼자서도 다 해 먹었는데.. 알았어. 나와서 먹어볼게.”
그리고는 잠시 더 앉아서 가게 여기저기를  눈 여겨 보시고, 홀 서빙 언니들과 몇 마디 농담도 하시고, 다른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자 슬그머니 일어나서 손짓으로 인사하고 가셨다.

   조심하시라고, 가시는 길도 조심하시고, 내일도 꼭 뵙자고 인사를 그렇게 드렸건만,
하지만, 2018년이 다 가도록 그 분은 보이지를 않고, 함께 오시던 지인분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내일모레면 또 올 한 해가 다 가는데, 우스개 소리도 곧잘 던져주시고, 목소리도 엄청 컸던 그 아저씨는 지금은 이름도 없어진 국민학교 저 위쪽 하늘에 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류시화의 수필집에 나오는 것 처럼 내가 드린 그 콩나물국밥이 누군가의 마지막 손길이었을까?

  생은 때론 막막하다.  항아리는 깨어지고 집에 먹을 것을 기다리는 어린 것들 눈망울은
눈에 밟히고 온 몸은 땀범벅으로 피곤이 엄습하고, 해는 뉘엇뉘엇 서산을 넘어섰고, 갈길은 구만리인데, 그때 문득 어디선가 짐을 들어주는 따스한 손길이나, 위로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고, 가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가난의 서러움을 아는 것을..  나는 올 한해가 가는 마지막 달력 그 끄트머리에서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삶에 내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잘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로 이렇게 또 한 해를 닫는다.   
 이 삶에 내 마음이 내 진심과 내 모든 것이 듬뿍 담겨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