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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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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은 날


BY 이쁜이 2018-09-28


명절을 앞두고 머리를 하려고 미용실에 들렀다.
아침 일찍 이라서 손님은 나 혼자였다. 잠시 후 어느 노인이 예사롭지 않은 옷을 입고 들어왔다.
 
“많이 기다려야 해?”
 
“사장님 조금 앉아계세요. 손에 약이 묻어서요.”
 
“아니 바쁘면 이따 올게.”
 
원장은 손님을 맞이한다기보다는 술주정뱅이를 달래는 말투다.
 
“저 어르신 걸음걸이도 비틀? 한 것 같고 발목까지 내려온 비닐 코트를 입은 모습이 꼭 알콜 중독자 같이 보여요. 기력이 없으신 것 같은데 금방 끝난다고 하시지...”
 
“다시 오시겠지요. 커피 드시러 오신 거예요.”
 
“오~잉? 술 드신 것 같은데 또 오시면 어떻게 해요?”
 
“집에는 커피가 없대요. 그래서 아침이면 커피 드시러 오시는데 바로 가셔요.”
 
길 건너 사시는 수석 전문가이신데 아침이면 모닝커피를 마시러 미용실에 오신다고 한다. 마나님이 단골손님이고 온 가족이 이용하는 미용실이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갔지만 아직 롤을 감고 있는데 노인이 들어오셨다. 명절맞이 염색을 하신다며 모자를 벗으신다. 귀 뒤쪽으로 조금 남은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나는 주책 스럽게 웃음이 나오려고했다.
그 분은 발목 까지 내려오는 옷을 벗으며 내게 말한다.
 
“아줌마 날 쳐다보는 눈이 웃고 있는 것 같아. 이 옷이 젊어보여서 그렇게 보는 거지? 이거 이렇게 보여도 영국제 우비야.”
 
“ㅎㅎㅎ`` 어르신 우비는 관심 없고요 염색 안 하셔도 은발 스타일이 멋스러우세요.” 
 
“그래? 아줌마 말 참 예쁘게 하네. 기분 좋아요."

아들의 명령이라고 몇 가닥 없는 머리를 검게 염색하셨다.
펌 요금을 내려는데 카드 단말기가 고장이란다.
노인은 내 펌 요금을 내 주신다고 그냥 가라한다.
 
“술 깨시면 후회 하실 텐데요...”
 
“나? 난 담배는 피워도 평생에 술은 안마셨어. 몸이 허락을 안 해서 못 마셔.”
 
이유는 머리 스타일도 은발도 멋스럽다고 말해준 보답이라고 하신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들어 보았으나 말 한마디에 9만원을 벌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아침이었다. 어른을 보는 눈을 조금 더 크게 떠야 하겠다.
어르신들이 비척대는 걸음은 술이 아니라 기력이 부족해서 라는 것.
멋스럽다는 말 한마디에 미용 요금을 내어주시는 여유로움 뒤에 그분의 외로움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비단 그분만의 외로움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어차피 외로운 동물이라 했던가? 
다복한 어른일지라도 외로움은 있는것 어른들에게 예쁜 말씨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친구의 역할을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에 약속을 해본다.
오늘아침 황도 3개를 씻어 담고 고맙다는 메모와 그 돈을 봉투에 넣어 미용실에 전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