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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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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BY 이루나 2018-04-29

곱게 꽃단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 앞에 우두망찰

서서 비가 내리는 풍경을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올라가서 우산을 가져올까?

아니면 그냥 몇 발짝 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갈까? 아파트 9층에서 베란다를 거쳐 내다

보면서 이슬비가 내리는 걸 미쳐 몰랐다. 촉촉이 소리 없이 내리는 비였다. 아주 어릴

때 루핑으로 만들어진 지붕 아래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툭,, 투툭,,,투투투툭,,,,,,,아

무리 얌전히 와도 알 수 있었다.  빗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잠이 들기도 했고 잠이

들었다가 요란한 빗소리에 어슴푸레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아침에 비가 오면 학교

가기 전에 우산 경쟁이 벌어졌다. 우산이 모자라 각자 줄 수 없으니  선택권 없이  엄

마가 배정을 해주는 데로 둘이 함께 쓰고 가야 하는데 둘째 언니와 나는 순순히 따르

는데 큰언니는 뭐든 혼자 독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려 해서 늘 시끄러웠다.

 그러던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마을을 휩쓴 대홍수가 있었다. 낮부터 내리던 비가 초

저녁 이 되면서 야트막한 문지방 아래까지 넘실대며 흘러가고 있었다. 어른들은 걱정에

싸여 있었고 초저녁잠이 많은 우리는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누군가 흔들어 깨우

길래 눈을 떴더니 이불 보따리와 솥단지 두어 개를 챙기신 아버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에 취해 눈을 비비는데 어디선가 꽹과리를 두들기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다급하게 무언가를 알리는듯한 요란한 소리에 놀라 아버지를 쳐다보니  피난 가라고

알리는 소리라 했다. 동네 이장과 몇몇 청년들이 꽹과리를 두들기면서 피난을 가라고 

소리소리 질러가며 동네를 돌고 있었다. 가장 어린 막내를 둘째 언니가 업고 쌀과 이불

보따리를 들은 어른들을 따라 집을 나와 신작로를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이발소 집으로

피신을 했다. 이발소는 졸지에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어찌어찌 잠이 들고

아침에 눈을 뜨니 한잠도 못 잔 어른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발아래 마을을 굽어보니 신작로 아래 야트막한 마을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로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던 마을은 지붕만 겨우 보이고

물은 그곳이 마치 원래 강이었던 양 마을을 가로질러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마니째 가져다 놓았던 쌀이 따 떠나라 갔을 거라 애석해 하면서도  마을 주민 모두가

피난을 했으니 다행이라 했다. 3일 만에 물이 빠지고 아래로 내려가니 형체도 알아볼수

없는 집에는 남아 있는 살림살이가 거의 없었다. 진흙을 퍼내가며 건져낸 건 수저 몇 개와

흙 속에 파묻힌 채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굴러다니는 그릇 몇 개가 전부였다. 걱정하던 쌀

가마니가 그대로 있기는 했지만 먹을 수는 없었다. 입은 채로 허겁지겁 집을 버리고 목숨만

건진 사람들은 식량도 옷도 없었다. 마을로 들어오던 다리조차 끊겨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

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을까? 타타타타 ,,,,, 헬기 소리가 나더니 하늘에서 마을로 무언가

떨어 트리는데 구호물품이었다. 어른들이 모여서 박스를 풀자 쌀. 라면. 헌 옷. 다이알비누

등이 쏟아져 나왔다. 배급받은 구호 물품과 냉수로 주린배를 채우면서 지독했던 그해 여름이

가고 있었다.

여름 장마가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아버지는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산에서

나무를 잘라다 기둥을 세우고 흙벽돌을 찍어가며 구슬땀을 흘리시더니 다시 루핑 지붕을

덮어 올렸다. 탁,,, 타닥 ,,,, 투투투툭,,,,,,, 우리는 다시 루핑 지붕 아래서 잠이 들었고 밥을

먹었고  울고 웃었다. 47년전의 빗소리가 생각난건 아마도 얼마전 그곳을 다녀오면서 떠오른

잔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가난의 상징같은 루핑지붕 아래서 함께

들었던 빗소리를 언니들도 기억할까? 다음에 만나면 물어 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