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라크 의회가 9살 어린이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 시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63

도와드릴까요?


BY 그대향기 2016-05-02

낮에 마트에 갔을 때 일이다.

 

내일 우리 집 할머니들 합동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갈비며 국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었다.

 

그 동안 몸이 많이 안 좋은 할머니 한분이 있어서

 

차일피일 생일잔치를 미루었다.

 

 

서울대병원에서 한달 보름 동안을 치료와 시술을 하시느라

 

몸이 많이 축나셨는데 이제는 어지간히 기력을 회복하셨다.

 

아무리 병원이 잘 한다고 해도 집밥만 하겠는가.

 

반찬은 화려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고

 

편안한 내 집에서 식사를 하시니 며칠 사이 몰라보게 좋아지셨다.

 

 

따끈한 국물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라

 

뚝배기에다가 돌솥밥처럼 노릇노릇하게 밥을 지어

 

밥은 따로 퍼 드리고 쌀뜨물로 숭늉을 해 드리면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아주 맛있게 드신다.

 

황태국이나 콩나물 국도 뚝배기에 보글보글.

 

 

생일이 지나버린 세 할머니들과 총 네분의 생일잔치다.

 

고기도 넉넉히 준비할 겸 마트에 갔을 때

 

차에서 막 내려 마트 자동문 앞에 설 무렵

 

몸이 많이 불편한 장애우를 만났다.

 

날씨도 그리 덥지 않았는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양손에는 무슨 짐들이 들려 있기에 내가

 

"어디까지 가시는지는 몰라도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했더니

 

"차가 곧 올겁니다.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거절하셨다.

 

 

"~..."

 

그러고는 마트 문이 열리기에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

 

마트를 두어바퀴 돌아 반찬을 다 산 다음

 

계산대 앞까지 와서 혹시나 싶어서 밖을 내다보니

 

아까 그 장애우는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거절한게 아니었구나.

 

때로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불편해 할까 봐 망설여지기도 한다.

 

몸이 불편하면 본인이 가장 힘들겠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도 안타깝다.

 

더운 날이나 추운 날에는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많이 저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여학생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거나

 

공기놀이를 하면 꼭 나타나서

 

목발로 고무줄을 끊어버리거나 공기돌을 흩어 버렸다.

 

 

그래도 여학생들이 그 아이한테 덤비지 못했던 이유는

 

그 목발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목발을 번쩍 쳐 들고 위협을 하니

 

감히 그 아이한테는 덤비질 못했다.

 

목발을 짚고 다니니 손 힘도 어지간히 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놀고있던 고무줄을 그 아이가 또 끊어버렸다.

 

한두번 당한 일도 아니어서 이번에는 나도 가만 안 있을거라며

 

그 아이가 목발을 쳐 들기 전에 내가 먼저 일격을 가했다.

 

자리에서 순식간에 일어나 그 아이의 면상에 주먹을 날려 버렸다.

 

 

그런데 이를 어째~

 

그 아이 코에서는 쌍코피가 터진게 아닌가?

 

여학생한테 맞은 것도 억울한데 쌍코피까지 터졌으니

 

그 아이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질데로 떨어졌고

 

나를 잡아 죽일 듯이 쫒아왔다.

 

 

내가 누군가?

 

학교 대표 단거리선수가 아니었던가.

 

그 아이의 악 쓰는 소리를 뒤로 하고

 

번개같이 달려서 넓은 운동장으로 도망을 갔다.

 

목발을 짚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나를 따라 잡지는 못했다.

 

 

저만치 가서 뒤를 돌아보면

 

그 아이가 얼굴에는 피칠갑을 해서 씩씩대며 또 쫒아오고

 

거리가 좁혀진다 싶으면 또 도망가고

 

그러기를 몇번 하다가 수업 종이 울렸다.

 

수업시간 내내 나를 째려 보던 그 아이의 눈초리는 사나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 아이의 집을 지나가야 했기에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냅다 달려서 도망을 갔다.

 

그 아이는 내가 그렇게 빨리 도망갈 줄을 미쳐 생각을 못했겠지.

 

신발장에서 내 신발을 찾아신고 복도를 달려 나가고 있는데

 

우리 교실 뒷문이 거칠게 열리고 있었다.

 

 

그 뒤로 그 아이의 고무줄 끊어먹기는 시들해졌다.

 

나도 그 아이도 더 이상의 충돌은 없었다.

 

그 대신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나를 건드리면

 

쌍코피 터진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나는 해결사였다.ㅋㅋㅋ

 

 

그 아이한테 미안하다.

 

다리가 불편해서 같이 놀아 줄 남자친구가 별로 없었던 그 아이는

 

체육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다.

 

다른 남자애들처럼 축구도 배구도 달리기도 함께 못하니

 

얼마나 심심했을까?

 

 

그 때는 같이 어렸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까?

 

쌍코피 터지게 한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는 않겠지?

 

'그 친구가 보고싶다'는 프로그램 어디 없나?

 

그 땐 미안했었다고 사과할 기회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