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녘에 느닷없는 남편의 전화
" 아~ 상쾌하다 . 아침공기가 하얗타 역시 겨울엔 추워야 해 ~ "
아침에 시인 같은 이 무슨 아름다운 표현일까
참 의아하다.
서로 말폭탄을 던져가며 한바탕 전쟁을 치루어 놓고선 나의 눈에서 눈물 빼놓고...
백내장 수술후엔 울면 안되는 줄 알고 많이도 참았는데 한번 터진 눈물보는
그동안 밀렸던 눈물을 쏟아 내어도 눈에 전혀 이상이 없었다
아침 출근길의 상큼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하얗다라고 표현하여
나도 모르게 한바탕 웃었다.
" 바로 그거야 ~ 이해인 수녀님의 책에 이렇게 표현되어있어. 누구나 시인처럼 말을 하면
상대방은 반드시 웃는다. " 라고 말이지
" 한복은 했어 ?"
"아니...기운도 없고 맥도 못추리겠네 "
" 그러지 말고 콩이하고 동네 한바퀴 돌고 얼른 할 일은 해야지. "
참내, 아무리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하지만 무슨 장난질인지
언젠가 손주 볼 할배가 될꺼면서 철딱서니 없는거 보면........기가 찰 노릇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해댄다. 이렇게 속은 세월이 30여년 넘어가네
황혼이혼을 생각하며 도장 찾느라 설합이란 설합은 다 뒤져보아도
어디다 잘 걷어두었는지 도무지 도장을 못찿겠다. 도장도 도망을 갔나보다
뭐가 있어야 재판이혼을 하던 협의이혼을 하던 앞으로 홀로서기를 해볼터인데
없는 넘은 참 좋겠다. 요즘말로 배째라 니 마음데로 하세요잖아
몇십년 부리고 살다가 이제와서 버려도 하나도 손해볼 것 없는 장사라고 함부러 해데는
비열한 쉐이...지금 심정 같아선 시인같은 말이 안나오네
며칠전 정 떨어졌다고 선전포고 같은 말을 해놓고선 내마음에 비수를 꽂아놓곤.
해서 내가 남편집을 찿아가 그동안 나의 응어리를 얘기했다
왜 나의 목에는 덩어리가 걸려서 호흡하기 힘들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그냥 그 자리에서
넘어가고 싶을까 ? 를 생각하다 어린시절을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폭력'이었다
엄마가 양장점 하시느라 바깥으로 나가시고 어린동생들은 줄줄이 나에게 맡겨줬고
식모언니도 나가버리고 모두 나의 짐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초등5~6)
지시하는일이 너무 많았고 사실 아버지께 몇대 맞기도 했다.
나에게는 충격이고 분노였다. 왜 내가 잘못없이 맞아야하는데 ........ !!
그런 반항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중3때까지. 아버지의 무서움을 느끼기 보다는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졌다 내가 잘 못을 않했는데.... 왜 !!
엄마는 부산 명문여고에 합격한 나를 서울의 여고로 보내버렸다.이모네 집으로....
다짐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의 반대인 남자가 내 남편의 이상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이 30이 되도록 이사람 가리고 저사람 가리고 하다보니 지금의 남편
키작고 못생기고 그러나 내눈에는 성격이 좋아 보이고 성실해보이는 저냥반을 만나서
한달만에 결혼을 해버렸다.
결혼 한달만에 때리네 감히 나를........아버지가 오버랩 된다. 아버지 보다 더했음 더했지
까칠하고 더러운 성격의 남자를 만났다. 운명의 장난처럼........
슬픈일이다. 폭력이 주는 한사람의 삶은 이렇게 망가져 늘 길을 묻고있는 가련한 여인으로
주저 앉으려 한다. 남편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고 아버지 생각을 하면 남편이 떠오르고 약물로도 치료가 안되는 나의 이 슬픈 마음을 결혼 30여년만에 남편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절대 폭력으로는 사람을 고칠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입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시인 같은 말로 인간관계를 맺어가야지
바르고 예의로운 아름다운 언어로도 관계 맺기가 힘드는데 아내를 함부러 여기는 집 치고
잘 되는집 못 보았다
내가 아름다운 언어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말이 이렇게 아름답다는걸 왜들 모를까 ?
아무 말 없이 듣고있는 남편.
내딸도 폭력쓰는 아버지를 보았잖아
내딸은 이 결혼생활을 어떻게 이어갈까 . 예식 끝나고 나면 친정아버지는 마음으로라도
딸곁을 떠나주면 좋겠다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한 인간의 존엄성이 맥없이 무너지려는데.
이냥반 '인권운동연대'의 회원이다. 회비는 꼬박꼬박 내고있나보다
자기 아내가 본인에게 어떤 인권유린을 당했는지도 모르고 인권운동을 하고있다.
볼쌍 사납게시리...... 이래서 삶은 연극이라 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