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공평한게 나이드는거라 했던가?
빈부의 차별없이 아주아주 공평하게.
부자라고 더 늦게 나이드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하루 24시간이 48시간으로 늘어지는 것도 아니다.
저울추보다 더 공평하게 주어지는게 나이.
어쩌다보니 내 나이가 50대 딱 중반이다.
삼남매의 엄마고 한 남자의 아내다.
결혼 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크고 작은 일이긴 해도 늘 남편을 도왔다.
망하기도 했고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남편의 오로지 한 여자만을 사랑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사랑으로 행복하다.
아이들도 대체로 착하다.
남의 집에 아쉬운 소리 안하러 가도 되니 그것도 감사하다.
어깨가 좀 시원찮기는 해도 내장기관들은 건강하다.
얼굴에 잡티가 생기기 시작했어도 팽팽하다.
나는 이런데....엄마는 내 나이 때 어땠을까?
영양크림이란게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냈던 시절
유행이나 멋부리기는 먼 나라 사람이나 하는 거라고 앞만 보고 걷던 걸음
외모가꾸기보다 내 자식 입에 밥술 들어가는게 더 급했던 엄마
과부는 아닌데 늘 남편이 부재중인 것 처럼 힘겹게 가정을 일구던 엄마
부잣집 둘째 딸이 자존심 다 버리고 수건 하나 푹 눌러 쓰고 5남매 안 버리고 살려 낸 엄마.
근면과 알뜰함이 몸에 베어 지혜롭기까지 했던 엄마는
강단있고 남편인 아버지보다 더 배짱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지만 않았더라면?
키는 작아도 부지런함은 누구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오직 가족들을 지켜내기 위한 철저한 봉사요 희생이었다.
가정에 무심했던 아버지 때문에 늘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
친구들과의 수다도 사치인양 엄마는 언제나 동분서주 동동걸음....
끼니걱정에 자식들 학비걱정에 마음의 여유란게 없었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었던 시절 날이 밝으면 들로 산으로 돈 되는 일을 찾아 나섰고
해거름에 집으로 돌아 와 굴뚝에 연기나야한다며 뭐라도 끓여 가족들 먹이시던 엄마
엄마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최씨 가문에 시집와 남편 잘못 만난 덕분에
고생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유머가 있었던 엄마였는데
진정으로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요즘 문득 그게 궁금하다.
엄마는 내 나이 때 무슨 꿈이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꿈을 꾸며 사는데...
나는 지금도 하고 싶고 되고 싶은게 많은데 엄마는 그 때 뭐가 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꿈이 뭐였을까?
자식들 배 안 곯게 하는 그런 평범함 모성애말고 여자로써 꿈 같은거.
왜 진작 엄마 살아계실 때 그런 이야기는 못해봤을까 싶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으로써의 사명이나 의무 이런거 말고
여자대 여자로써의 대화는 왜 해 보지 못했을까 그게 후회가 된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나도 그날들을 떠 올리며 엄마는 내 나이 때 그랬었는데 할 걸.
명절이 가까워지니 엄마가 그리운가보다.
엄마가 떠 내 주시던 시원한 식혜며 돔배기산적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