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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는 인생 2. (똥개천)


BY 편지 2015-07-27

버스 종점 이름은 남한산성입구였다.

종점 옆으로 물이 흐르고 물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오십 미터쯤 걸어가면

눈이 땡글한 딸 아기를 안고 있는 삐쩍 마른 젊은 새댁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보인다.

집 앞에 흐르는 물은 산에서 내려올 땐 맑은 물이었다가 마을로 접어 들면서 생활폐수와

화장실물이 섞여 건기에는 구린내가 풀럭풀럭 신나게 마을로 날아다녔다.

부자가 망하면 3년이 간다고 생활비를 뺀 나머지 돈으로 두 칸짜리 방을 얻을 수 있었고,

방과 방 사이로 입식부엌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면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 옆에 세면이나 빨래를 할 수 있는 수도가 있었다.

우린 한번도 와 본적 없는 이곳에 딸을 앉혀놓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딸이 앉아서 이유식을 받아먹던 시기였다.

 

직장을 잡는다고 이력서를 쓰고 매일 밖으로 나가 면접을 보러 다니던 어느 날,

집으로 남편을 찾는 전화가 왔다.

경찰서라면서 사기혐의를 받고 있어서 조사할게 있으니 경찰서로 나오라고 했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사기까지 쳤냐며 울었다.

아닌데, 난 사기 안 쳤는데.”

그러면서 남편은 고개가 두시방향이 됐다. 긴장하면 왼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자꾸 두 시로 갸웃거리며 남편은 경찰서로 갔다.

사연인즉,

난생 처음 본 놈이 취업을 시켜준다며 남편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가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신나게 사기친 놈은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날아갔는지

숨어버렸다고 한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린 그날 분실 신고를 해서 다행이 혐의가 풀리긴 풀렸지만

아무튼지 기가 막혀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려다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세상물정 모르는 실속 없는 남편을 만나 나는 겨우 이십칠 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별일이 차암 많다.

 

남편은 작은 회사지만 일년 만에 새 직장을 얻었다.

매일같이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서울로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엔 늦게 오거나 새벽이슬을 묻히고 들어왔다.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니 증거를 잡을 수도 없고, 애기를 업고 뒤를 밟을 수도 없고,

믿어보려고 했다. 의심을 해 봤자 나만 슬퍼지니까.

한 달에 얼만 안 되는 월급을 갔다 줬지만 먹고는 살았다.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을 받은 지 몇 달이 지날 무렵 회사 경리라며 집으로 전화가 왔다.

저한테 돈을 빌렸어요. 얼마 되지는 않지만 안 줘서 집으로 전화를 했어요.”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켜가며 이 참에 자세한 걸 물어보았다.

일은 잘 하고 있는지,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월급 외에 보너스는 없는지.

월급은 많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갔다 주는 돈이랑 차이가 났고, 보너스도 줬다고 했다.

일은 잘 하는데 근무 중에 없어질 때가 많고 퇴근 시간에 안 들어올 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조만간 회사에서 극단의 조치를 취할 것 같다며,

여직원은 빌려준 돈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전화기를 내려 놓은 손이 겨울 찬바람에 맨 살을 들어낸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고,

가슴까지 차가워지면서 시리고 뻐근해졌다.

남편에게 얘기를 했더니 여직원 돈은 얼마 안되니 갚으면 된다고 했고

도박은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피곤하다며 돌아 누워 자버렸다.

남편은 할말이 없으면 돌아누워 잘도 잔다

문갑 안에는 공구함이 있고 그 안에 망치가 들어있다.

팔십 년도에는 결혼할 땐 문갑 사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문갑 속은 두 칸으로 나눠져 있어 그 안에 잡다한 것을 넣어두었다.

색색색 무지개 색 실이 들어 있는 반짇고리, 온몸이 스텐으로 된 다리미,

색동저고리 천으로 만든 다리미 받힘, 그 중에 공구함도 있었다.

망치를 꺼내 머리통을 냅다 칠 용기는 없어도 머리채를 잡고 몽창 뽑아버리고 싶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 둔 것이 아니고 또 잘렸다.

 

남한산성 종점으로 이사 오던 날은 막 봄이 오고 있던 계절이었다.

똥 개천엔 수양버드나무가 많았는데, 나룻배처럼 생긴 나뭇잎이 연두색이었다.

며칠 내린 장맛비로 개천 다리깽이로 물이 쿨럭 넘칠 것 같아 마음 조이며 쳐다보았던

여름이 무사히 가고, 남한산 산밑으로 노르스름하니 가을이 왔을 즈음

유모차에 딸을 싣고 은색 돗자리를 유모차에 걸고 남한산 계곡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언제나 나는 겨울이 길고 싫다. 그중 지하보일러실로 연탄을 갈러 갈 때가 제일 싫었다.

웅덩이 같던 그곳은 춥고 음산하고 가스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곳보다 더 깊고 어두운 곳은 남편이라는 사람이었다.

너무 껌껌한 그 속, 알 수 없는 웅덩이,

그게 이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내 남편이라는 인간이었다.

 

다시 봄이 오고 있었다. 개천엔 엊그제 내린 봄비로 그나마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양버드나무 잎이 옅은 봄바람에 출렁거렸다.

새 봄이 되면서부터 은행이라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카드 빚을 갚지 않았다고 빠른 시일 내로 갚으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벨소리만 나면 심장이 배꼽까지 내려갔다가 올라 붙었다.

그래서 낮에 걸려 오는 전화는 받지 않기로 했다.

대문에 붙어있는 우편함엔 은행에서 날아온 편지가 무섭게 나를 노려보며 떡 하니 서 있었다.

내가 뜯어보려고 했더니 남편은 자신의 우편물은 뜯어보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낚아챘다.

참 잽싸기도 하지. 취직이나 잽싸게 하지. 씨부랄!

그러던 어느 따스하고 유난히 따스한 봄날,

양복을 입은 낯선 손님이 일층 시멘트 마당에 들어서더니

남편 이름을 대면서 여기에 살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딸과 단 둘이 있었다.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손님은 은행에서 나왔다고 했다.낌새가 그런 것 같았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딸아이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나는 유리현관문을 열고 얼른 들어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 눈 크기만큼 창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봄날의 낯선 손님은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개천을 건너

웅덩이 속을 가진 남편이 살고 이곳을 잘 찾아와서는

새댁의 새파란 거짓말을 믿고, 다시 개천을 건너 버스를 타고 은행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개천가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썰매를 타며 딸아이는 컸다.

나는 똥 개천을 고향산천 시냇물이라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돌멩이가 많았고, 키 큰 싱아도 많았다.

시냇물을 멍하게 바라보며 집에 잘 안 들어오는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