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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이 좋다


BY 그대향기 2015-03-18

 

 

지금은 저녁을 마치고 집으로 퇴근 한 시간 

집과 일터가 한 울타리니 따로 퇴근이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하루 업무를 완전히 마치는 시간은 할머니들이나 행사 손님들 저녁을 마친 시간이다. 

저녁을 마치고 난 후에는 특별한 업무가 없으니 퇴근이다. 

이 후의 시간은 다음 날 새벽까지 집안 일이나 내 개인적인 일을 하며 보내는 거다. 

 

가장 먼저 일복을 벗고 샤워를 하고 상큼한 샤워코롱을 살짝 뿌린다.

편해도 아주 편한 옷으로 갈아 입는다. 

주로 헐렁한 면티셔츠에 펑퍼짐은 고무줄바지를 입는다. 

구속이란 구속은 다 벗어던진다. 

뭔가 조이는 느낌이 싫다. 

헤드밴드로 이마까지 훤하게  훌렁 벗겨놨다.

 

거실 여기저기 남편이 먹고 놔 둔 물컵을  찾아서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씻어 엎는다. 

낮에 외손녀들이 놀다 두고 간 인형이며 장난감들을 바구니에 담아둔다. 

세탁물을 구분해서 드럼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에서 마른 빨래들을 걷어다 갠다. 

극세사 걸레에 살짝만 물을 적셔 엎드려 넓은 거실이며 안방을 싹싹 닦는다. 

아휴..날마다 닦는 거실에 이 무슨 먼지래? 

 

때로는 외손녀가 왔을 때 손만 닦고 버린 물티슈를 모아뒀다가 방을 닦기도 한다. 

나는 두번 세번 세척해서 쓰곤하는데 애들은 그냥 버린다. 

편리해도 너무 편리한 요즘 젊은 엄마들. 

아깝다. 

아무리 집을 정리한다고 해도 그런 것들은 진짜 버리지 못한다. 

 

대충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고 난 다음 

초미니 내 서재에 들어 앉는다. 

피아노 한대와 책상 하나 컴퓨터 한대 그리고 5단짜리 책장 두개가 전부다. 

커다란 창으로 언제나 밝은 빛이 찾아 드는 곳 

책상 앞 벽게 걸린  세계지도에 내가 다녀 온 나라에 분홍 스티커들이 웃음짓게 한다. 

 

남편의 서재하고 문이 맞닿아 있다. 

필요할 때면 언제고 남편을 부를 수 있는 편한 방이다. 

뉴스며 카페, 에세이방의 글을 한번 죽 훑어 보고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가구들이  두개도 같은 것이 없다. 

애들이 어릴 때 쓰던 팽이자국이 찍힌 원목가구에 수집한 짙은 나무색 고가구며 새하얀 화장대까지. 

 

통일성이 전혀 없는 가구들이 오히려 재미있다. 

몇년 더 쓰다가 한가지 색으로 통일을 해야겠다 궁리 중이다. 

얼룩덜룩 마치 예비군복같다. 

허리 수술하고 장만한 넓은 돌침대에 네활개를 펼치고 눕는다. 

아... 

편안하다. 

 

거실에서는 남편이 영화를 본다고 올려 놓은 텔레비젼 소리가 왕왕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안방에서 낮게 음악을 튼다. 

정기구독한 전원생활을 뒤적거리거나 소설책을 펼쳐든다. 

침대머리맡에는 몇권의 읽을거리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도 행복하다. 

이 시간만은 완벽하게 내 시간이다. 

 

빈 공책을 꺼내 앞으로 살 집을 설계해 보기도 한다(수십 수백번을 그려봤지 싶다.). 

질리지 않는 취미생활이다. 

계절옷을 정리하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신상은 없지만 내 옷이 많았구나...정리도 한다. 

애들이 다 나가 있으니 우리 부부 둘이 오붓하게 좋다.  

 

가끔 외손녀 둘이 오면 한바탕 난리가 나지만 그래도 좋다. 

이것저것 냉장고 가득 사 뒀던 간식거리들을 내 주면 달달한 뽀뽀는 보너스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손님들.ㅋㅋㅋ 

가고나면 몇 시간을 낑낑대며 대청소를 하지만 오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만다. 

그래도 나는 집이 좋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이 너무 좋다. 

그 누구의 방해나 간섭도 받지 않는 밤 시간은 더 좋다. 

가끔 밤바람에 은은하게 우는 추녀 끝 풍경소리 

그 소리에 대답하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나는 어느 새 읽지도 않은 책을 끌어 안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