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78

봄편지


BY 편지 2015-03-07

햇볕이 잘 드는 화단엔 초록 풀들이 고개를 살짝 내밀고 있다.

출근길에 고개를 숙여 풀들과 눈인사를 한다.

너 꽃 마리구나. 그래 너는 민들레고, 냉이와 꽃다지야 안녕? 그럼, 알지 망초잖아.

아직 어린 애기지만 난 너희들을 잘 알고 있단다, 하면서 말을 걸고 대답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잔디밭에 개들이 산책을 하고, 가장자리 벤치엔 노인 분들이 해와 마주보기를 하고 있다.

잔디밭 산수유나무엔 노르스름한 꽃 풍선이 달려 있고,

명자나무 가시나무 끝에 연 초록 물이 올라오고 있다.

참새들이 모여 떠들고, 까치가 부지런하게 나무에서 나무로 넓이뛰기를 하고 있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창가에 앉아 있으면 봄이 내 어깨를 톡톡 친다.

이제 곧 자기가 와서 뜰이며 나무며 공기에 봄빛을 흠뻑 묻힐 거란 예감을 알리는듯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봄 햇살을 어깨에 얹고 인사를 한다.

봄이라 햇볕이 참 다르네요.”

어떤 분은 대낮부터 기분이 날아갈 듯 술에 취해서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봄나들이 가야죠? 기분 좋아 술 한 잔 했습니다.”

술 냄새가 사무실로 가득해 창문을 잠시 열었다.

술 냄새 대신 봄 냄새가 창문만큼 들어온다.

창문아래도 풀잎이 옹기종기 모여 나왔다. 나는 창에 얼굴을 빼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안녕? 풀들아? 나도 봄나들이 떠나고 싶다. 너희들이 잔뜩 피어난 곳으로.”

 

누구도 아직 뜰 안을 들여다보진 않지만 나는 3월이 되고부터 뜰을 들여다보고 다닌다.

나만의 아락함. 정수된듯한 출근 오전 공기. 부드러우면서 향을 품은 바람냄새.

사무실에서 느끼는 한낮의 직진햇살.

사람들이 떠는 수다 못지않게 수다쟁이 새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뜰에 올라온 풀들과 인사를 하고, 나무에 걸린 꽃 풍선을 보며 출근을 하면서

거의 말을 하지 않던 내가 수다스러워 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무실 뜰에서 사는 고양이에게도 말을 건네보고,

얼굴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더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는 계절,

내가 좋아하는 봄이 돌아와서 기분이 봄 햇살처럼 방방 떠있다.

 

난 속 깊이 자유분방한 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속해 있지 않고, 자연 속에 더 속해 있기에

세상것에 휘말리거나 쫓아가지 않기에 자유분방하달 수 있다.

꽃이 피면 꽃들과 얘기를 하고, 길 고양이에게 말을 붙이고,

나무를 올려다보며 뭐라 뭐라 떠들어댄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맛이 간 여자로 보는 것 같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세상것에 소외됐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일하는 동안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지만

연락처도 주고 받지 않고 밖에서 만나지도 않는다.

아주 친한 사람 두 명과 연락처를 주고 받았지만 가끔 카톡으로 안부만 전할 뿐이다.

집 일터, 집 친정, 집 개 산책. 집 아이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 정도만이

내 외출의 전부이지만 난 그리 외롭다거나 외톨이라거나 울타리 속에 나라든가

중년의 자폐증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내겐 누구보다도 감성에 젖는 대상이 살아 있고,

그 대상은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차별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기에

난 그 대상을 찾아가고 인사하고 사귀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 뜰에나 피어나는 풀꽃이고, 나무고, 동물이고, 곤충이고, 바람이고, 햇살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중에 제일 좋아하는 봄과 겨울잠을 자는 겨울이 그 대상이다.

겨울엔 나는 꼼짝을 안 한다.

그래서 겨울엔 뭐하냐고 물어보면 겨울잠 자고 있습니다.” 대답한다.

이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3월이왔다. 슬슬 봄친구들을 만나러 떠나려고 한다.

집 가까운 뜰이나 일터의 화단이나 꽃이나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떠나려 한다.

그리고 봄엔 편지를 쓴다.

꽃 이야기가 대부분인 내용이지만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인 봄이 와서

누구에게든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친정 엄마는 텃밭을 호미질했다고, 파란 상추는 지금 뿌려야 해서 뿌렸다고,

치마상추 씨를 사러 성남시장에 갈거라는 요즘 통화 내용이다.

어젠 산에 가서 의자에 앉아 한 시간 햇볕을 맞고 왔고

오늘은 동네할머니들이랑 운동하느라 동네 네 바퀴를 돌았다고

너도 봄이니까 밖에서 햇볕 맞으며 운동하라고 덧붙이셨다.

 

엄마 말 더럽게 안 듣는 나는 집안 소파에 늘어져 나는 자연인이다재방송을 봤다.

나는 행복하다 하루에 세 번씩 외치면 모든 시름 다 잊고 저절로 행복해 진다고 하기에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풀꽃이 피는 봄이 와서 진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