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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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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민간인


BY 편지 2015-02-02

드디어 윤이는 군인신분에서 민간인신분으로 신분 상승을 했다.

남자는 여자와 다른 신분제도가 있는데 그게 군인이라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부모 밑에서 부모가 책임져야 할 유년시절이 있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젊은이가 되면

아주 색다는 세계에 몸을 바쳐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라에 속한 군인시절일 것이다.

 

여자들은 전혀 모르는 뭐 같이 공유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고, 고색 찬란한 시절도 아니고,

그 이름도 당찬 군인아저씨라는 명칭에 속하게 되는데

그게 참, 부모나 아들이나 모두들 피했으면 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게 참, 휴전선이 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시간이

오게마련이다.

 

감사하게도 윤이는 별일 없이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당당하게 민간인이 되었다.

윤이에게 주어진 이십 개월이란 시간은 외모가 남자다워졌고,(좀 나이가 들었다는 거지만)

키가 조금 더 자랐고, (이삼 센티 더 컸다)

자신의 통장에 백몇십만원이 묵직하게 들어있다는 점이다.

 

윤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가정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란 건 잘 알기에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한 달에 칠만원씩 적금을 들겠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어떤 감미로운 느낌을 가져다 주면서도

한편으론 아침 안개 속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처럼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윤이는 그 돈으로 아울렛을 뱅글뱅글 돌아 적당한 가격의 정장느낌 나는 겉옷을 사 입었다.

그 옷을 걸치고 아빠가 제대기념으로 사준 가죽워커를 신고,

자신의 돈으로 운전면허를 접수했고, 운전학원 순환버스에 민간인 신분으로 올라탔다.

이주일 동안 게임을 새벽까지 해도 그냥 놔뒀다.

친구를 만나 새벽쯤에 맥주몇잔 걸치고 와도 잘했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윤이는 나를 닮아 거의 집에 있는 집돌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  친구를 만나러 가면,

그래 그래, 용돈 줄까? 옷을 뭐 입고 갈 거야? 늦게 들어와도 돼, 하게 된다.

지금이 제일 편안한 한량 같은 시절이라는 것을

이제 곧 복학을 하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취업준비를 머리 터지게 하게 될 것이고

사회에 나가면 피 터지게 살벌하고, 전쟁처럼 전투적이라 여기가 진정 군대구나, 하고 알게 되겠지.

지금 실컷 놀고, 지금 실컷 늦잠 자고, 지금 실컷 친구들도 만나고, 지금 실컷 게을러도 봐라.

 

그렇게 이주일 동안 지금 실컷분위기에 빠지더니 알바를 한다고 서울까지 나갔다 왔다.

윤이가 하고 싶은 알바는 엑스트라였다.

그래서 부대에서 핫팩을 세 박스나 주문해 제대하면서 들고 왔다.

엑스트라 업체에 접수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연락이 안 오고 있다.

아마도 방학이라 알바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한편이론 보편적이고 평범한 외모가 아니라서 엑스트라 자리가 나지 않는가 보다.

키가 좀 큰 편이라(183센티) 병졸 1, 2, 3안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너무 마르편이라(65키로) 음식점 손님으로 가서 밥 먹는데 기분이 덜 날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경험 삼아 연예인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궁금했고.

왜 안 불러주지, 하면서 핸드폰만 마지작거리고 있다.

아 참, 제대하기 전에 핸폰을 먼저 구입했다.

자신의 통장으로 다달이 핸폰요금을 빠져나가게 했다면서 오만 원짜리 지폐만한 전화기를 샀다.

 

군대에서 벌어온 돈이 이제 얼마나 남았으려나?

얼마 안남았을게 뻔하지만 윤이는 용돈을 줘도

아직 있어요. 필요하면 달라고 할게요하며 받지를 안는다.

늙은 개 이빨에 치석이 너무 꼈다고 이십만 원을 들여 자기 돈으로

치석 제거를 해준다고 하는 걸 누나와 내가 말리고 있는 중이다.

그 돈으로 네가 그렇게 사고 싶다는 시계나 사!

 

윤이는 우주항공기에 붙은 계기판 같은 시계를 제대하자 마자 사려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미국 직수입하는 시곈데 아주 가격이 싼 곳을 발견해 주문을 했다고한다.

드디어 자그마하고 가벼운 택배가 도착을 했다.

우주항공기를 들여다보듯 두근거리는 마음을 조절하며 조심스럽게 꺼내더니

뭔가 이상하다며 인터넷에서 정품을 한참 보더니

이거 짝퉁같은데….” 시계를 주문한 곳에 전화를 하더니….

결국은 가짜라는 판단 하에 우주항공기 계기판은 보내졌고, 다행이 환불을 무사히 받은 상태다.

싸게 사려니 정품이 아닌 것 같고, (실제로 아니란다)

제대로 사려니 너무 비싸다고 한다. (삼십만 원이 넘는다)

사치스러운 물건을 처음 사고 싶어해서 내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봤더니

제가 살 거예요. 엄마는 신경 쓰지 마세요.” 한다.

아마도 알바를 하게 되면 그 돈을 모아서 살 생각인 것 같다.

이 년 동안 군대에서 준 월급을 다 써도 얼마 안되는 돈인데,

그 고생한 돈으로 갖고 싶은 것을 산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겠니, 사렴.

 

무엇이 지나가고, 무엇이 남는지

지금 하고 싶을 때 하고갖고 싶은 거 하나쯤 사도 된다고 본다.

그리고 설명할 길 없이 얽혀 있는 우리 형편에 대한 물음이 남아 있지만

그런 것 조금 접어두고, 지금 실컷 놀고, 게으르고 편하게 살렴.

공상과학 영화에 나옴직한 그 시계 꼭 사길 바란다. 군인아저씨에서 민간인이 된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