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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쁘다


BY 비단모래 2014-09-07

 

추석이 돌아오고 있다.

친정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난 올 추석은 참 마음이 허전하다.

명절이 돌아오면 부모님께 드릴 과일을 준비하고 한과를 준비하고

그리고 약간의 현금을 준비해 명절전에 친정집에 들리곤 했다.

올 추석엔 갈 곳이 없으니 참 마음이 허하고 하루종일 우울 비슷하게

몸이 천근이었다.

의미없다는 것...정말 부모님 계시지 않으니 명절도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맏며느리의 추석이 있으니 마음을 추스려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

시장볼 것을 큰 며느리에게 적어주었다.다행이 해마다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선뜻 장을 봐준다.

그 수고로움도 만만치 않을텐데 큰애 노릇을 하느라 애쓴다.

 

음력 8월 열나흘 새벽이다.

오늘 나는 발바닥 불이 나게 바쁠것이다.

20여명의 식구들이 모일것이다.

식구들 먹을 것, 차례 지낼 것 ,성묘갈 것을 챙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분주한 날인데 잠이 오지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쁘게 추석명절을 준비하고 보낼것이다.

온 식구가 마음 넉넉하도록 챙길것이다.

결혼해서 34년간 해온 맏며느리 역할..올 추석도 잘 해낼 것이다.

친정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를

노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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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으로 행복을 가르치신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우리 6남매가 말을 시작하면 가르치신 노래가 있다.

이른바 해피송이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아엠 소 해피 아엠 소 해피 아엠 소 해피 이츠 홀리 데이

와다시와 우레시 와다시와 우레시 와가시와 우레시 이찌마 우레시

워정꽬라 워정꽬라 워정꽬라 장장 꽬라..

 무학이셨던 어머니의 발음 그대로 적어본다.

 

어머니는 이렇게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해피송을 가르치셨다.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참 행복해 하셨다.

어쩌면 그렇게 잘 부르니 하시면서 환하게 웃어주셨다.

이 노래를 배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우리는 4개 국어 노래를 부르는 신동어린이 소리를

들었고 학교에서도 교단에서 자랑스럽게 이 노래를 불렀다.

6남매 길러내시느라 고단하고 힘든 길을 걸어오신 어머니를 지탱한건 해피송..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라는 노래 였다.

 그리고 공부 잘 하는 오빠와 동생들이 어머니의 해피송..

나는 기쁘다 노래를 끝없이 부르실 수 있게 했다.

해피 송을 열심히 가르쳐 주시고 부르신 어머니 덕분에 6남매는 힘든 일도

 해피하게 넘기며 그야말로 해피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노래가 사랑의 비료가 되었고 사랑의 영양분이 되었고 사랑으로 길을 내셨기 때문이다.

 

 선비이신 청빈한 아버지, 공부만 하시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는

그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시면서도 우리 6남매에게 아버지를

“수양산 그늘이 광동 팔십리”라고 표현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은 니들 아버지시다”를 가르치셨다.

 어떻게 생각하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을 자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은

니들 아버지라고 가르치실 힘은 어디서 나오신 걸까?

아버지대신 6남매 자식들의 밥을 먹여야했고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면서 늘 번개 불에

콩 볶는 뜨거운 등으로 회 푸대 종이 봉지에 보리쌀 한 되를 들고..

새끼줄에 매단 연탄 한 장을 들고 고단한 골목길을 단내 나는 몸으로 들어 오시면서도

어머니는 어떻게 우리형제들 에게 아버지를 칭찬하실 수 있으셨을까?

어머니는 칭찬의 대가셨다.

우리들이 책을 읽으면 어쩌면 그렇게 책을 잘 읽니,

 책을 잘 읽는다 칭찬하시고, 노래하면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하니..

노래 잘한다 칭찬하시고, 공부하면 그만하고 나가 놀아라, 나가 놀아라 하시면서

지혜롭게 고단함을 웃음으로 바꾸어가셨다.

자식은 들어 일러 내가꾸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언제나 조그만 일도 크게 칭찬해 주셨다.

그 칭찬이 용기가 되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다.

자식을 들어 일러 내가꾸시는 지혜가 바로 우리어머니의 사랑이셨다.

 

 그 어려운 생활 속에서 어머니는 늘 책을 읽으셨고 읽어주셨다.

나 어렸을 때 한 겨울 흰 눈이 싸르락 내리는 그 밤,

밤을 소복하게 만들던 눈 오던 밤에 어머니는 옥루몽을 읽으셨다.

한 손으로는 배고픈 잠투정으로 칭얼대는 내 가슴을 착한 우리 딸 잘자라,

 토닥이시며 등잔불 어둔 심지를 돋우며 나직나직 읽으셨다.

어린 나에게 어머니 책 읽어 주시는 소리가 자장가였다

 나는 어머니에게 옥루몽과 숙영낭자전 장화홍련전을 들었다.

어린나이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는 배고파하는 어린 딸에게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것으로 배를 채워주셨다.

그이야기로 배를 불리며 어린 겨울을 보냈다.

 고단함과 힘든 생활을 잊기 위해 불러주신 노래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아엠 소 해피.아엠소 해피.아엠 소 해피.이프 올로 데이.

와다시와 우레시.와다시와 우레시.와다시와 우레시. 이찌마 우레시

워정꽬라 워정꽬라 워정꽬라 장장꽬라를 요즘도 나도 나직이 부르며 지내고 있다.

마음속의 주문처럼 부르고 있으면 행복해지고 등불을 켠 것처럼 마음이 환해진다.

 

살아오면서 참 어려운 일 많았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속의 태양과 바람 태풍 천둥 번개 비바람 눈보라를 이겨내야

둥근 나이테가 생기듯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를

부르신 어머니의 긍정의 노래와 잘한다 착하다 예쁘다라는 칭찬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 행복 속에 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 와서 자식들 고생시키고 사회에 공헌한 일 없으니

몸이나 주고 가고 싶으시다고

자신의 몸을 충남대학병원에 헌체하셔서 의학도들에게 기꺼이 몸을 주신 어머니

그일 또한 칭찬과 긍정의 힘 아니겠는가.

착한 우리 큰딸, 늘 착한 우리 큰딸이라고 불러주시던 어머니가 그리운 가을이다.

 

             ( 9월호 어느 회보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