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물러가고 구월이 시작 되었다.
스포츠 센타에 등록을 하고 아침마다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온다.
육십오세 이상은 어딜 가나 할인이 되니 우리 나라 좋은 나라다.
너무 대우를 해주니 늙은 것이 벼슬인것처럼 아는 노인들이 가끔 있지만 그건 노인 세계뿐이 아니라
인간세계가 그러하지 않은가 싶다.
모든것에 한계를 지킨다는것은 어려운 문제다.
이 나이가 되었음에도 인간관계의 안전거리 유지란 늘 어려운 과제다.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다녀오면 버릇이 없어지고 엄마 말을 안들으며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삐딱해진단다.
바로 잡는데 삼박 사일이 걸린단다.
모든 말을 들어주고 어리광을 받아주는 할머니가 문제라는 뜻이다.
할머니랑 살고 싶다고 자주 말하는 윤지의 속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할머니에게 오면 아기처럼 모든것을 요구할수 있기때문이다.
할머니 밥 먹여줘.
할머니 치카 치카 해줘.
할머니 나 쉬 다 했어 닦아줘.
할머니에게 오면 윤하의 언니가 아니고 할머니의 귀여운 손녀노릇만 하면 되니 할머니랑
살고 싶은것이다.
윤하는 혼자 밥을 먹는데 윤지는 내게 먹여달라고 입을 벌린다.
아빠가 보고싶다고 꺼억 꺼억 울음을 우는 윤지를 본 이후에 윤지의 어리광을 받아주게 되었다.
아이 가슴에 그리움이 메어 있다는것이 내게도 너무 가슴이 아픈 일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아이들의 현실이다.
이제 내가 자중을 할 시기가 온것 같다.
손녀가 딱하고 예쁘다는 이유로 내 아들과 헤어진 며느리와 가까이 지낸다는것은 사실 모순이다.
엄마땜에 라는 원망이 아들에게서도 날아온다.
아이들에게 닦친 현실을 아이들이 극복하는 일은 며느리에게 맡기기로 한다.
이제 나는 손을 놓는다.
\"이제부터는 아이들 맡기는 일은 없을거예요. 그게 맞는것 같아요.\"
문자를 받았다.
교통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눈치 빠르게 말해주니 고맙다.
시어머니란 내 아들에게 잘 해주는 며느리가 예쁜것이다.
그것이 시어머니의 한계다.
아이들은 아들이 데리고 올때 보면 되는것이다.
더이상 다가 가지 않기로 한다.
만남과 헤어짐..
이 나이에도 면역이 되지 못하는 이별이라는 놈..
이별은 늘 새롭게 내게 아픔이 되어 다가온다.
멍청히 앉아 있다가도 뚜르르 눈물이 흐른다.
구월이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