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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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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다녀와서


BY lala47 2014-04-02

 

서울역에서 사촌동생이 출근길에 고모를 내게 인계했다.

KTX를 처음 타보시는 고모는 기차가 소리없이 출발하자 놀람을 금치못했다.

소풍 가는 어린애처럼 들떠있는 고모와 천안에서 호두과자도 사먹고 창밖을 지나가는

경치를 내게 묻고 또 묻다가 두시간 이십분만에 신경주에 도착했다.

신경주에서 택시를 타고 예약되어 있는 호텔로 들어가는 길은 보문단지를 지나서 있었다.

호텔방으로 들어가기까지 걸음이 자유롭지 못한 고모는 내 팔에 매달려 색시걸음이다.

 

작은 고모한테 전화를 하니 사촌동생과 호텔로 달려왔다.

팔십칠세인 작은 고모는 당산동 고모보다 건강해보인다.

“어쩐 일로 이렇게 갑자기 경주에 온거야? 미리 연락 좀 하고 오지.”

“작은 고모집에 불이 났었다는데 걱정도 되고 새 아파트도 보고싶으시다고 해서

모시고 왔어요. 어쩌다 불이 난거지요?“

”개가 여섯 마리 있었어. 내가 외출하면서 개가 추울까봐서 전기난로를 켜놓고 갔던거야.

그래서 다 타죽었지.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한 마리라도 살릴려고 내가 뛰어 들어갔다가 나도 죽을뻔 했어.“

 

듣고 있던 사촌동생이 한마디 한다.

“암튼 개는 잘 죽었어. 엄마는 개의 노예였다니깐.”

작은 고모가 딸을 향해 눈을 흘긴다.

작은 고모는 큰고모와는 달리 정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얘 너 고생이 많다. 이렇게 걸음도 못걷는 노인을 모시고 온다는 일이 보통일이냐. 너 정말 고생한다. 이 걸음으로 조카 앞세워 올 생각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 조카를 이렇게 써먹는거네.”

작은 고모가 까르르 웃고 큰고모는 난감해하신다.

저녁은 호텔식당에서 장어구이를 먹었다.

사촌동생이 한턱 내는거라고 했다.

 

“언니. 제가 교통사고가 났었기 때문에 차를 없앴어요. 운전을 못하겠더라구요. 내일 차를 하나 빌릴테니까

영덕에 게 먹으러 갑시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실순 없잖아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인 사촌동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초면인것 같은데 동생은 어릴적에 나를 본적이 있다고 말한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산다고 하는데 왜냐고 묻진 않았다.

신상에 관한 질문은 삼가기로 했다.

십이인승의 큰 차를 타고 다음날 영덕으로 향했다.

“큰 차가 편하실것 같아서 큰차로 빌렸어요.”

사촌은 활달한 성격인것 같았다.

 

게는 맛있었다.

다음주부터는 영덕에서 게축제가 있다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영덕에서 오는 길에 경주 시내 구경을 하고 작은 고모댁으로 향했다.

딸과 각자 근처에서 따로 각각 혼자 산다는 일이 이상하지만 그 또한 왜냐고 묻지 않았다.

함께 살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

처음으로 언니를 맞은 작은 고모는 감격이라는 표현을 쓰신다.

두 사람이 참으로 사이가 나빠서 오랜 세월 서로 끊고 살기도 했는데 이제 저승길이 멀지않았다며 큰고모가 다 풀고 싶다는 이유에서 경주 찾았으니 의미가 있는 행차였던 셈이다.

 

영덕 다녀온 피로로 곯아떨어져서 정신없이 자는 언니를 들여다보며 걱정스러워 하는 작은 고모는 혼잣말을 하신다.

“에궁.. 이 다리를 해가지고 왜 왔누..이 정도로 걷지 못하는줄은 몰랐네.”

경주 시내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하루 만에 만개를 했다.

이상 기온으로 꽃도 이상하게 피는것 같아 웃었다.

개나리와 진달레 목련 매화 벚꽃이 순서도 정하지 않고 한꺼번에 핀 모습이 곧 봄이 끝날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신경주 역까지 배웅을 나온 작은 고모와 사촌과 작별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러 가는 일도 사실은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한쪽 팔에 잔뜩 매달린 고모를 끌고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당산동에 고모를 모셔다 드리고 지하철을 타고 오산으로 오면서 이제 더 이상 이런 여행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왼쪽이 당산동 고모님이시고 내 옆에 경주 고모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