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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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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모성애


BY 코코정 2013-09-30

 

아기를 낳기 전 \'모성애\'가 어떤 감정인지 정말 궁금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 구덩이 속이라도 뛰어들수 있는게 모성앤가?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몸이 부셔져라 매니저 역할도 다 할 수 있는게 모성앤가?

 

 

출산을 앞두고는 이런 상상을 종종 했었다.

힘겹게, 힘겹게 아기를 딱- 낳으면

왜 TV에서 많이 보던 것 처럼, 간호사가 조막만한 아기를 안고

내 몸 위에 올려주거나 내 얼굴 옆에서 보여주면

감격, 감동, 사랑스러움... 뭐 그런 게 마구마구 퐁퐁퐁 솟으려나? 하고.

 

그런데

실제로 내가 출산을 한 날, 아니 출산을 한 그 시각.

진이 빠지고 정신은 혼미한 상태로 멍- 하니 천장만 바라보면서

의사의 후처치만 빨리 끝나기를 덜덜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내 옆으로 왔다.

그리곤 내 얼굴 옆에 가까이 대주면서, \'아기 얼굴 한 번 보세요\' 라고 \'로보트 처럼\' 말했다.

 

나는 솔직히, 고개를 돌릴 힘 조차 없었고

내 아기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 아기 얼굴을 보면서 기뻐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그 혼미한 와중에 내가 했던 생각은,

\'저 간호사 되게 로보트같다\'

심지어 \'나는 이러고 있는데, 이런식으로 보여주는게 무슨 소용이야. 귀찮아\' 였다.

그렇다고 내가 출산을 기뻐하지 않고, 감동을 못느꼈다는 건 아니다.

처치가 잘 끝나고 혼자 누워있을 때, 그리고 남편이 들어왔을 때,

알 수 없는 감정에 복받쳐 엉엉 울고, 정신을 차리곤 바로 지인들한테 연락하고 난리가 났었으니까.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다들 출산하고 아기를 바로 보면 눈물이 나고,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한다던데. 나는 모성애가 없는건가?\'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백일의 기적도 지나고

이제 어느덧 200일을 바라보고 있는 아기와 나.

어느정도 먹는 패턴, 자는 패턴, 노는 패턴이 조금씩 정해지기 시작해서 (바뀌긴 하겠지만)

아기가 우는 이유도 보채는 이유도 비교적 금방 알아채는 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밥을 줘도 안먹고, 재워도 안자고, 놀기도 싫다하고, 기저귀도 갈았는데 계속 보채고 징징거리고 울 때는

솔직히, \'짜증\'부터 먼저 난다.

 

말 못하는 아기가 무슨 죄며

어디가 불편한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불편함이 있는지

그것부터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고 짜증부터 내는 내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모성애가 없나? 엄마는 이러면 안되는거 아닌가?\' 또 이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기 젖병소독을 하기 싫을 때도

아기가 노는 공간을 청소 하기 싫을 때도

아기를 위해 좋은 물건을 사는 게 돈 아까울 때도

\'뭐지, 모성애가 없나\' 하는 생각이 그간 많이 들었었다.

 

 

 

근데

최근 읽어본 \'마더쇼크\'라는 책의 영향도 있을거고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기사나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모성애\'는 분명, 하늘에서 주어진 \'선물\', 이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누구나 \'엄마\'가 되면 \'모성애\'를 거저 받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모성애\'는 잘못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엄마 한 몸, 엄마의 인생을 희생하는 게 모성애라는,

자식의 성공이 곧 엄마인생의 성공이라는,

자식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진짜 부모의 역할이라는,

이런 말도 안되는 \'가짜 모성애\' 때문에

수많은 육아맘들이 자책을 하고, 자괴에 빠지고, 우울해지는게 아닐까. 이건 분명 잘못된건데.

 

\'엄마라면 반드시 000 해야해.\'

\'엄만데, 000도 못해?

이런 거, 이게 과연 \'진짜 모성애\'일까.

 

 

 

우리는 누구나 다 \'초짜\'로 시작한다.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도 그러하다.

설령 그게 \'둘째, 셋째아이\' 엄마라도 마찬가지다. \'둘째아이 엄마\'로는 처음 서는거니까.

그러니까 못하는게 당연하고

처음 접하는 상황에 짜증이 날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초짜\'들에게

사회는, 사람들은, 자꾸 강요한다.

\'강요된 모성애\'는 \'진짜 모성애\'랑 다르지 않을까.

그 \'진짜\'를 누가 알까.

아무도 모른다. 엄마 스스로만 안다.

 

 

 

200만원짜리 유모차를 주저없이 사준다고 모성애가 있고

20만원짜리 유모차를 손떨면서 겨우 사준다고 모성애가 없고,

그런건 분명 아니다. 

 

 

이 한 몸, 이 한 인생 희생해서 아들 딸에게 갖다 바치는 거

그것도 모성애의 전부는 아닐거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면 모를까,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 희생은, 아이에게도 좋지만은 않을거다.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이다.

 

엄마의 행복만 찾는답시고 엄마의 임무를 소홀히 해도 된단 말은 아니다.

아이는 뒷전, 가정은 뒷전, 내 행복만 찾아 살거면 결혼할 필요도 아이를 낳을 필요도 없는 거고.

엄마의 임무에 충실하다보면

분명 희생하는 부분이 생기고, 마냥 행복하지 못한 부분도 생기겠지만

다른 엄마들, 육아의 \'프로\'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모성애가 없다며 자괴감에 빠져들어가는 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엄마라면 누구나 \'진짜 진짜 모성애\'는 마음 속에 있다.

그걸 끄집어 낼 수 있는 능력도 있다.

다른 사람이 그 모성애를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되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거저 받은 선물, 잘 가꿔나가는 건 바로

\'엄마\'의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