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찰거머리같이 달라 붙어서
가을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새벽부터 헉헉대며 척척 달라붙는 옷에 휘감겨
하루 해가 너무 길게 느껴지던 그 여름도
몇줄기 굵은 비에 맹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거짓말처럼 에어컨바람이 싫어졌다.
허세같은 자존심을 세우 듯
빳빳하게 풀 먹여 덮었던 홑이불이
서걱서걱 마른 갈대가 스치는 소리같다.
몸 따로 이불따로인게 서럽게 다가온다.
언제 가을이 온거지?
어느날 부턴가 방문을 꼭 닫고 잠을 자고 있었다.
배만 겨우 덮고 자던 이불을 발까지 내려 덮었다.
서걱거리던 훝이불을 깨끗이 빨아 넣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이불을 꺼내 덮었다.
뒷모습으로는 성별이 애매하던 머리모양도
여름이 다 가고 찬바람이 불면서
소슬한 바람결에 제법 날리는 머리칼이 되었다.
파마를 해야하나?
늘 이맘때가 되면 갈등이 생긴다.
포장에 불과한 여러가지들이
피할수 없는 필수조건이 되어가는게 부담스럽다.
이러나저러나 그 속에 든 사람은 동일한데
언제나 이런 변화 저런 탈바꿈에 고민하게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없음이다.
못난 자아가 늘 말썽인게지.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든
그는 그 나름의 선택인 것을
늘 내 기준으로 보는 지극히 이기적인 잣대
그 잣대가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름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육적인 상처 정신적인 상처들이
마치 자격미달의 견습생이 남긴 훈장처럼 남았다.
여덟바늘의 꿰맨 상처와 화상흉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점점 지쳐가고 있는 나약해진 정신력.
아직은
아직은 더 씩씩해야하고
더 싱싱하게 살아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린데
10년을 한달처럼 살아내고 싶다.
여름이 날 잡아먹기 전에 내가 여름을 잡아버려야겠다.
굴삭기로 푹푹 파서 꽁꽁 뭍어버리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