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버지인 친할아버지께서는 군수셨다
그 옛날 군 서기만 해도 콧대가 하늘 같은 시대에 삼형제 막내였던 울 아버지는 보리고개를 모르고 자란 귀동이그 자체였다
일제시대에는 징용을 피하는 편법으로 철도국에 근무하면 면제가되었다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부정부패는 늘 따라 다녓나보다 아무튼 그 막강한 빽으로 들어간 곳이 아버지의 영원한 직장이 되었다
어릴때 친구분들이 우리집에 오시면 늘 철도국장계시냐그러며 놀리는 말을 어린 나는 늘 국장님인줄 알았다
그게 그리 높은 직책인걸 고등학교되어서야 비로소 알았다
5학년때 우리반 특별구역이 교장실 청소였어 마루바닥에 초칠하며 지금이나 예나 청소하나는 열심히 하는편인나를 아니 뛰어난 미모땜인지 교장선생님이 날 보고 너의아버지는 뭘 하시는 분이고 묻길래
평소 들은대로 철도국장님이예요 햇더니만 갑자기 교장샘이 나보고 일어나 보라며 집이 어디며 꼬치꼬치 묻기시작하길래 한참 답변하고나니 감을 잡으셨는지 청소 계속하라하셨다
집에 와 오늘일을 얘기하니 저녁밥상에 온 식구들이 웃느라 난리다
국장이 아니란는 얘기도하지않고 엄마도 니가 이뻐서 물어본 모양이다그러면서 지나고 나서 보면 울 아버지는 요즘 신세대 아빠였다
한번씩 심부름으로 역에 가면 어린 나를 위해 기관사도 아니면서 몇개 안달린 기차를 요즘 놀이 기차처럼 손수 운전하시며 왕복시켜주셨다
어린 내눈에는 그 거대한 쇠덩이가 우리것인줄 알고 아버지가 다른역으로 전근 간다기에 우리기차는 어떻케 가져가냐고 물은적도 있다
국민학교 수학여행 8시에 집합인데 엄마가 일찍 가봐야 춥다고 원래 시간보다 일찍 학생들 부른다며 40분 늦게 나를 역에 데려주는바람에 전화도 없는 시절 울 아버지 나를 위해 기차를 정지시켜 놓았다
내가 가니 교감선생님이랑, 울아버지, 역무원 아저씨 몇명이랑 얘기하고 계셨다
그 때도 나는 그 기차가 오직 나를 위해 서 있는 줄 몰랏다
요즘 같으면 바로 목이 달아나는 일이지만 그땐 기차자체도 고장이 많코 제때 움직이지 않은 시대니 가능한일인거 같았다
아무튼 울아버지덕에 요줌처럼자가용시대가 아니라 명절때 되면 학교 선생님부터 내가 다닌 대학 교수님까지 나한테 차표 부탁할정도로 울 아버지는 처세술도 좋은분이셨던거 같다
기차로 갈수 있던곳은 이북 빼놓코 가족들 몽땅태워 여행 다니시는걸 무척 좋아 하셨다
철도 신분증하나만으로도 가족모두 무료통과시켜주던 말도 안되는 좋은시절이였다
지금그랬다간 야단 나지만 일찍 놀러가야하는 날은 우리가족 몽땅 역 사무실에 미리잠을 자게했다
그땐 차가 별로 없는 시절이여서 미리 그러지 않으면 기차를 타지 못해서 그런거 같았다
누런 찬합에 반찬 밥층층이 챙겨 보자기에 꽁꽁싸매고 딸들 앞세워 기차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때 완행열차는 옆으로 길게 좌석이 되어 있었다
저마다 물어 보곤했다 다 집에 딸들인가요 딸만 수북히 있는 우리집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울엄마는 그 때마다 챙피햇다 그러는데 울 아버지 자랑스럽게 \"다 내가 낳은 우리집딸들이죠\" 웃으며 대답을 곧잘하시고 또 웃스개 소리를 잘해서 늘 사람들을 웃겼다 지금 그 재능을 내가 고스란히 닮았다 그런다
아무튼 농담으로도 아들없다는 얘기는 하지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나고 잔소리는 심했지만 엄마에 대한 유일한 사랑 표현이 엄마에게 아들없다는 자괴감을 주지않을려고늘 아들 하나 더 낳으라는 주변 사람에게 나는 장손이아니라 아들이 필요없는 사람이라 그러며 딸이 좋타며 엄마들으랍시고 크게 얘기를 하셨다
한여름 해수욕장가면 울 엄니는 밥먹을 채비하는 동안 딸들 여러명 죽 줄지어 세워 그 당시는 수영복빌려주는곳이있어 주인에게 얘들 몸에 맞게 하나씩 주시요 하며 물놀이 튜브까지 아버지가 빌러주셨다
엄마가 해야할 일을 아버지가 늘 담당했다 그게 적성에도 맞았고 엄마랑은 정 반대 성격이여서 그런것에서는 두분이 트라블이 없이 잘지내셨다
귀동이로 자라셔서 늘 반찬 타령 흰밥 타령 청소 옷 매무시에 거의 목숨거신 분 같았다
내 동생 태어나가전까지는 늘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심지어 아버지친구모임에도 맛나는 거 나를 먹일려고 무릎에 앉아 음식을 입에 넣어준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케 건강하고 자상하다 못해 엄마가 늘 여자가 될려다 하나님이 실수로 빚어 남자로 태어난사람이 너거 아버지다 그랬다
그런 아버지가 정년퇴임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조금씩 변해갔다 지금생각하면 치매가 조금씩오면서 앓아 눕기시작한지 1년만에 돌아 가셨다
늘 바지런히 움직이던 분이 갑자기 갈곳이 없어지니 정신적 공황이 온 것이다
딸들 다 멀리살고 가까이 살고 있는 나는 시집살이땜에 잘 갈수도 없었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를 낳는 순간에 깨닫고 키우면서 깨닫지만 아버지 사랑은 특히 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야 비로소 깨닫는거 같다
여자들은 시집 보내면 되지 뭣하러 돈 쳐들어 가며 대학보내노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빈정 대는 친인척 진담에도 울 아버지는 대꾸한번 하지않코 우리들을 공부시켰다
돌아가실무렵 큰집에 아들많타고 하나 입적시키고 가라고 강압이 들어와도 울 아버지는 묵묵 부담으로 일관하셨다
엄마에게만 절대로 나 가고난뒤 아무도 입적시키지말고 니도 죽을때까지 절대 자식한테 구박 받지않게 움켜지고 살아라 하셨단다
두 분이 늘 싸우셨던 기억 밖에 없다
진짜 소소한걸로 시작해 급기야 크게 번졌다 가령 여름에 국수를 먹어도 아버지는 쇠고기다진거 국수에 끼미로 올려야 아무소리 안하고 드셨다
삼복 더위에 엄마가 한끼는 대충 먹지 그러면 안방에 드러두워 아프다고 시위하셨다
물김치도 밤을 가늘게 채 썰어 넣어라하고 아버지 어릴때 높은손님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시절에 친할머니가 접대용으로 만들어 주신걸 먹고 자라서 그런지 생전 보도 못한 음식 만든다고 울 엄니 엄청 고생하셨다 울 엄니는 친정에 맏딸로 자라 늘 동생들 챙겨 자신은 늘 뒷전으로 살아오신분이였고 자라온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버지는 막내라 어릴때도 할머니께서 당신요구대로 해 주지않으면 큰 무기가 학교 가지 않는다고 대청마루 한가운데 그것도 할아버지 출근하고 난뒤 시간 맞춰 드러누워 버티면 짹각 해 주던 버릇이 결혼을 하고나서도 응석아닌 응석을 엄마에게 풀었다
덕분에 음식솜씨하나는 우리엄마가 날로 느셨는거 같다
지금도 내짝들은 내 반찬 맛있었다고 기억한다
딸 중에 엄마 팔자 닮는 딸하나는 있다하더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상이 울 아버지였는데 시집오니 쌍으로 시아버지 서방 빼다 박은 울 아버지였다
한여름 멋쟁이 시아버지 흰 남방 다림질실컷 다리고 나면 울시아버지 와이샤스 깃이 안 산다고 다시 다려라햇다
나 보고 요리솜씨없다고 학원가서 좀 배워 오라 하시고 애고 애고 그래도 울 아버지정권시대가 좋았던거 같다
시집 정권은 어제 티비 보니까 그러대요 시집은 숙제와 같은거라 하기싫어도 꼭 해야하는 거라서 ....
기차를 보면 울 친정식구 전부다 아버지생각난다그런다
늘 시간나면 태워주던 우리한테는 놀이기구같은 추억이라고....
아버지 그때는 몰랐어요
아들없이 우리딸들 마니 낳아 키운다고 남들 한테 놀림도 마니 받으셔도 아랑곳하지않코 그런 딸들 다른집 아들만큼 기 안죽일려고 열심히 먹이고 공부시키고 좋은 풍경 마니 보며 낭만적으로 키우신거 이제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야 느끼게 되네요
나는 아이둘 달랑 키우면서도 아버지처럼 못 키웟거든요
용서 해 주세요 아버지 살아 생전 밥 한끼 대접 못한거 죄송해요
그리고 이제 말할수 있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엄마랑 싸우지 마시고 너무깔끔 떨지마시고 느긋하게 엄마랑 행복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