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거 되게 부드럽네...\"
언제 왔을까 백지의 얼굴인지 모르겠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어느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이 나의 왼쪽 뺨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오랜시간동안 여운을 남기고 지나간다.
짦고도 오랜시간속에서의 그 느낌이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촉각으로 다가오는것 같았다.
이대로 그녀의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손을 잡을려고하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었는지 왼쪽 창문을 바라보니
커텐이 정신없이 바람이 풍선이 날리듯이 날리고 있는것이 아닌가.
내가 투석중에 신문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지 고개가 뒤로 넘어가는 순간을 경험했다.
아 그건 한순간의 꿈이였구나 좋다가 말았어..그녀의 얼굴이라도 보았으면 덜 억울했을것인데
열려진 창문으로 들어 온 바람이 나의 왼쪽뺨을 여자의 손길이 스치듯이 지나갔는것 같았다.
\"방금 좋은 꿈 하나를 꾸었어요\"
\"무슨 꿈인데요?\"
바로 옆에서 투석액을 점검하고 있었던 키작은 간호사에게 꿈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하다가
나 혼자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만두었다.
아 정말 좋은 꿈이였는데 그녀 얼굴을 한번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행복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혹시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는 미래의 애인이라면,그래 그건 그냥 소원이다.
비가 내릴려고 준비하는지 왼쪽 창 넘어로 보이는 검은 구름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준비하는것 같다.
안개가 산 아랫쪽으로 깊숙이 내려와 있는것이 보이고 마치 금방 그려놓은것 같은
한폭의 풍경화를 보는것 같다.
투석 마치는 시간이 몇 시간이나 남았는지 시계를 바라보니 저녁 8시다.
갑자기 느껴지는 심심함이 무엇을하면 좋을지 1시간전 병원 로비 커피숍에서 올라 온
간호사들이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하면 학창시절 오락실에서 재미있게
놀았던 뽀글뽀글이라는 오락게임도 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기는것을 보면 정말 심심했다.
그 뽀글뽀글이라는 오락은 이쁜 공룡들이 거품을 뿜고 같은 점수를 마추면 점수대마다
과일들이 떨어지고 보석이 떨어지는데 그 시절 뽀글뽀글을 할때마다 보석이 떨어지면
나의 애인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라면서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어떤날은 시간이 흘러가는 계곡의 물처럼 빨리 흘러가는날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날은
차량들이 길게 정체되어있는 도로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도 그대로 있는 날이 있듯이
갑자기 바닷가로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스친다.
병원에서 걸어서 20분만 내려가면 광안리 해수욕장이 나오지만 평상시에는 자주 가지 않는다.
그저 모임이 있거나 그런날 아니면 잘 가는곳이 아니다.
투석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기분이 묘해지는것이 개찰구로 내려갈려면
또 걸어내려가야 하는데 그쪽으로 향하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서는 그층 휴개실에 가방을
던지고는 근처에 사람들이 없기에 마음편안하게 여름철 원두막에 눕듯이 누워버렸다.
갑자기 울적함이 밀려온 것도 아닌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 지금 혼자있는데 여기까지 와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거 지나가는 아가씨 붙잡아서 나하고 30분만 이야기 해줄 수 있을지 여쭤보는
실례되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나도 여자들처럼 한달에 한번 걸리는 그것이 찾아온것도 아니다.
3년전,
뇌졸중 아버지 때문에 봉사를 하셨던 어머니하고 많이 친했던 젊은 분이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면서 힘들어하는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디가 아픈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소파에 기대여 배를 움켜지고는 아픈듯이 있다가 화장실을 몇번 들락날락하는것을
옆에서 보면서 그것은 바로 여자들이 한달에 한번씩 격은 그것이구나 싶었다.
남자인 내가 해줄 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때는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폰 전화번호를 열람해보고는 애인이라도 있으면 전화를 걸어서 오라고 할것인데
언제인가 어떤 영화를 본적이 있다.
어떤 한 남자가 등 몇개가 켜진 지하철역을 걸어가다가 문득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여자다. 그녀에게 이 남자는 갑자기 나 외롭다
여기로 잠깐 왔으면 좋겠다는 말에 여자는 이유도 묻지않고 달려간다.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는 고개를 숙인채 있다가 여자가 곁에서 그 남자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여주는것을 보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상대방의 어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나도 하물며 사람인것을 지하철안 기둥이 있는 동그란 의자에 누워 바라보는 지하철역
천장은 눈으로 보고싶지 않을만큼 눈이 부시다.
10분동안 누워있다가 집으로 갈려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칼레이트에 올라 밑으로
한참동안 내려가며 보이는 차가운 의자에 젊은 연인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
그 모습이 부럽게 보인다.
마음 같았으면 비여있는 그들 옆 자리에 앉아 한참동안 부럽다면서 바라보았을지도.
그래 어느 누구 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가 보다.
바람을 가르면서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울린다.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순간 맞이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조금전의 내 마음을 알아주는지 이내 잊어버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