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살던 시절에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나보다 열살 아래의 동생이 한명 있었다.
요즘도 가끔 통화를 하고 백운호수가에 가서 밥을 먹곤 한다.
며칠전 전화가 왔다.
\"언니! 굴밥 해먹고 있지? 굴이 칼슘 덩어리래잖아.\"
\"귀찮아.\"
\"언니가 굴밥 잘 하잖아. 나도 언니한테 배워서 잘 해먹었어.\"
\"내가? 내가 굴밥을 가르쳐줬다구?\"
\"그럼. 할아버지가 굴밥을 좋아하셔서 언니가 자주 했어. 무우도 넣었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굴밥을 시아버님이 좋아하셨다는것도 이젠 기억에 없다.
그 시절이 기억에서 지워진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안에 굴밥이란 남아있지 않다.
수퍼에 가보았다.
굴이 보이지 않는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굴은 이제 끝이 났고 가을이 되어야 나온단다.
R자가 없는달..
MAY JUNE JULY AUGUST에는 굴을 먹지 않는것이라지만 아직 APRIL이 아닌가.
APRIL에는 분명이 R이 있건만 굴이 끝났다니..
기억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오래 된 일이다.
현관키 번호를 주민번호를 누르는 실수를 하고 내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카페나 내 블로그에
들어가는것을 실패하곤한다.
이젠 스마트폰에 비밀번호를 메모해두었다.
비밀번호를 통일하면 될것을 왜 잘난척 다 각각일까.
기록만큼 확실한 것이 또 있겠는가.
아줌마닷컴 비밀번호. 피플 475 비밀번호. 이메일 비밀번호. 조선블로그 비밀번호.
라라의 뜰 카페 비밀번호. 페이스북 비밀번호. 곰 TV 비밀번호. 다 제각각이니 내 기억력만
탓하진 않으련다.
기억력의 혼돈중에 가장 곤란한것은 약을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것이다.
월화수목금토일이 적힌 약함에 약을 분류해놓고 먹지만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헷갈려서
어제 목요일에 금요일 약을 먹은게다.
기억력을 믿지 못하니 비어있는 금요일 약함앞에서 주저한다.
마트에 가서 카터에 동전 넣는 방법을 깜빡 한다든가 통장 비밀번호를 까먹는 일은 허다한 일이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운동 한가지를 다니라고 아들이 자꾸 전화를 한다.
좋다.
복지관에 요가를 등록했다.
왠걸..
하루 해보니 도저히 그건 내가 할수 있는 체조가 아니었다.
늙고 굳은 뼈를 강제로 늘어트리거나 꼰다는것은 절명할 일이다.
강사는 제일 못하는 내 다리를 자꾸 건드린다.
미치겠다.
이러다 순직 하겠어요..
사무실에 가서 통사정해서 환불을 받았다.
정말로 순직을 할뻔했다.
암환자가 암이 아니라 요가로 순직을 하다니..
그건 말이 안된댜.
숨이 찰때엔 누군가 전화를 하면 대꾸해주기가 벅찼는데 며칠전부터 많이 나아졌다.
몸이 좀 나아졌으니 대청소를 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창문에 쳐놓은 비닐을 떼려고 의자를 놓고 올라섰다가 자신이 없어서 가만히 내려왔다.
요럴땐 남정네가 필요하다.
누군가 말했다.
가끔 밥이나 함께 먹고 영화관이나 함께 갈 그런 남자친구를 하나 만들라고.
웃긴다.
늙고 병들고 돈 없는 이런 여자를 좋아라 할 남자가 있겠는가.
머리에 총 맞았다면 모를까.
남자..
만만한 존재가 아니지.
겨울옷을 세탁기에 돌리며 세탁소에 보낼옷을 정리해본다.
세탁비가 만만치 않아 지난해엔 그냥 넘겼으니 올해는 세탁소에 보내야할까보다.
세탁기에서 돌고 있는 빨래를 널고 나면 오후엔 찜질방에 가서 퍼져 있어볼까한다.
혼자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