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은숙선배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에 봉잡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땡전 한 푼없이 불알 두쪽 뿐이었다는 사실을 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입성으로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는 그가 스스로 가난뱅이 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다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차마 그를 남자로 바라 보려고 하지 않았었을까?
그를 알았던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사람 볼 줄 아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십년이 흐른 후 우연한 지면에서 그의 시를 발견하고서야 말이다.
나와 친구가 그를 만났다.
물론 수소문을 해서 그의 전화번호를 따낸것도 나고 삼겹살에 소주한 잔 하자고 부추킨 것도 나다.
이 나이에 물불(?) 가리지 않는것도 어쩌면 갱년기 탓일까?
그가 약속장소로 출발을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자기는 여전히 키가 작다는 멘트를 날렸다.
키가 작다고? 스물두살에 알던 사람이 쉰 둘이 됐는데 여전히 작은게 당연한것을 왜 구지 각인을 시키지?
여전히 키가 작은 것 만큼이나 순수 할수있다면 이라고 되지도 않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삽십년이나 훌쩍 넘어버린 세월 때문에 약간은 어색했다. 그의 맨트 때문에 정말 키가 작긴 작구나 라고 계속 떠올라서
혼자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여전히 야자 하던 관계에 푸석푸석 먼지가 났다.
삼겹살이 놓이고 소주 몇잔이 오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나와 친구는 그저 듣고 있었고
그가 혼자 떠들어서 미안하다면서도 주저리 주저리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궁여지책으로 학원선생질을 한적이 있었단다
오십분 수업을 하기위해서 세시간을 외우고 들어 갔다고
그러다보니 책이 통채로 외워지더라고
인기강사가 되니 강남의 대형학원에서 스카웃을 해가더라고
그 잘난 대표강사자리를 유지하는건 술과의 전쟁이었다나 뭐래나. 돈이 주는 쾌감을 느낄만큼 느꼈을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님이 퇴직을 하고 파킨스 진단을 함께 받았을때는 스스로 나서서 거창한 퇴임식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꿈같은 첫 시집을 내기도 하고 이쁜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에게 원없이 빳빳한 지폐를 쥐어 주기도 하면서
다행히 신이 공평한 것이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일게다. 딱 그때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고
형편 없는 연봉이었지만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길이었으므로 과감히 진로를 바꾸었을 것이다.
어쨌든
박사논문이 통과되고 대학강단에 서는게 순서인데
살다보니 대학강단에 먼저서고 스팩때문에 공부가 싫은데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게됐고
소위 명문대 대학원 동기들이 같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쩌다 보니 왕따도 당하고 그게 서러웠고
자존심 때문에 또 하나의 시집을 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내가 멋지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자꾸만 돌려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하고 싶어 했다면 한숨도 안쉬고 지랄하고 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괜챦은 새끼라는 말을 해줘버릴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입을 꾹 다물고 나는 소주만 마셨다. 그는 떠들고 나는 웃으며 들었다. 함께 있던 친구도 그랬다.
그래 그랬다.
이제 그도 늙어서 겨우 소주 두 병에 취해버리는 구나 싶기는 했어도
강남대로 한폭판에 버리고 오기는 했어도
키가 작기는 정말 작았어도
어렇게 어쩌다가 삼십년만에 만나 서로 어색해서 야자 뜨기가 어색하고 또 어색하기는 했어도
이랬어도 저랬어도 그때 그랬어도
차마 하지 못한말이 있다면 여전히 순수성을 잃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았다는 것이 설령 위선이었다고 해도 갱년기 오지랍이 때론 힐링이 되더라고도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런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서 그만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