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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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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BY 그대향기 2012-08-26

 

 

 

 

바쁜 수련회를 끝내고 모처럼 하루 쉬는 날이었다.

뒷날이 쉬는 날이었는데 밤에 길을 나섰다.

이튿날 아침에 집을 나서면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기 다반사

큰 맘 먹고 늦어도 전날 저녁에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고향 경주에서 초등학교 동기회는 그 담날이고 하니 가까운데서 자고

오후에 동기회 참석하는 걸로.

 

남편은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바쁜 일만 아니면  해안도로를 따라 친정에 가기도 해서 익숙한 길인데도

휴가철을 지난 동해안 해수욕장은 한산하고 정겨웠다.

그 전날까지 억수같은 비가 왔는데도 파도는 잠잠했다.

해안선을 따라 모텔이니 펜션이니 민박한다는 안내표지판이 모래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투숙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현란한 불빛과 유혹적인 문구가 난무했다.

 

집 밖에서 잠을 잘 경우 내 기준은 가장 최근에 지은  깨끗한 숙소를 찾는 것이다.

호텔에서 잘 형편이 안되는 사정이니 그나마 가장 최근에 지은 깨끗하고

너른 숙소를 정한다가 내 나름의 기준이다.

남편이 먼저 숙소를 점검하고 나중에 내가 다시 결정하는 방식이다.

아직도 모텔이나 펜션, 콘도에서 잠을 잔다는게 익숙하지가 않다.

몇년 전에는 고마운 분의 선물로 호텔에서 이틀을 머물렀던 좋은 추억도 있다.

어느 해 휴가 때는 먹는 일에 최대한 아끼고 잠은 좀 나은 곳에서 자는 걸로 정했더니

숙박비가 너무 부담스러워 난감한 적도 있었다.

 

그 날은 동해안 해수욕장의 바다가 한눈에 다 보이고 파도소리가 알람이 되어 주는 그런 곳이었다.

짐을 풀어 놓고 파도가 바로 발 앞에서 철썩이는 곳에서 남편과 둘이서 회를 먹었다.

자연산이란 말에 속아도 믿어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켰더니 진짜 쫄깃쫄깃한게 맛있었다.

멍게 비빔밥은 상상외로 멍게가 너무 조금 들어있고 야채만 시퍼렇게 부풀려져 나왔다.

향긋함을 마음껏  맛 보려고 했던 생각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실망만 먹게 되었다.

그래도 분위기만은 이국의 어느 해변 못지 않은 낭만 그 자체.

술을 못하니 음료수를 들고 건배를 했지만 남편과 둘이서 밤바다의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그 더웠던 여름을 잘 견딘 우리 서로를 격려하며 내년 여름까지 건강하게~~!!

 

이튿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도 없는 아침바다를 부지런한 갈매기를 친구삼아 둘이서 걸었다.

파도에 깍이고 세월에 다듬어진 동글동글한 몽돌을 밟으며 우리도 이렇게 모나지 않게 살자 다짐하며

또 한 해의 가장 힘든 계절을 건너 온 안도감에 온 몸의 세포들이 다 긴장을 풀었다.

그런 힘든 노동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이런 아침 바다의 쉼도 값지지 않을 것이기에

건강 주심에 감사했고 이만큼의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음에도 늘 감사하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멋진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둘이서 오붓하게 떠날 수 있는

이런 짧은 한여름 밤의 여행도 충분히 그리고 눈물겹도록 행복하다.

좀 더 쉬운 일도 있을 것이고 좀 더 나은 보수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이 일을 하면서 지나 온 시간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헤어졌지만 그 인연들이 아름답기에

잊혀져서 서러운 이름이 아니어서 또한 행복한 여자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