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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그 여름.(계수나무 민박집)


BY 새봄 2012-01-15

나무 냄새가 난다. 습하면서도 화한 나무냄새.

낯선 산골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침, 넷째이모가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나는 마늘을 깠다.

밖으로 통하는 넓은 미닫이창을 열어보니 황토색 장판이 깔려있는 평상이 놓여있었다.

평상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깊은 산중임을 알게 한다.

주인아줌마가 채소 한 접시를 담아오셨다. 손바닥만 한 케일 몇 장위에 연한 쑥갓 잎과 풋고추였다.

텃밭에 심은 거라며 대파도 뽑아다 먹으라고 했다.

우린 으적으적 쌈을 싸 먹고, 막내이모는 과일과 함께 믹서에 갈아주었다.

음식은 넷째이모가 담당하고 나는 주방보조와 청소 담당이 되었다.

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계곡이 보이고, 그 건너 산이 보이는 평상을 물걸레질 했다.

막내이모가 아프지 않았다면 이곳에 여자끼리만 셋이 올 수가 없었을 거라며

 오지 여행 왔다고 생각하자, 넷째이모의 긍정에 우린 웃었다.

오지 중에 오지인 이곳이 궁금해서 모자를 하나씩 쓰고 마당으로 나갔다.

 

우리가 살게 된 민박집은 양쪽으로 계곡이 흘러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당엔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시원했다.

그늘을 많이 만든 나무는 계수나무. 그래서 계수나무 민박집 되었다고 한다.

동요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이름만 익숙하지 처음 접하는 나무다.

나뭇잎이 아카시 잎처럼 잎차례가 닮았고 심장모양이었다. 참 예쁜 나무였구나.

 

주인아줌마가 안내자가 되어 약수터로 갔다.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곳인데 그 길에도 계수나무를 볼 수 있었다.

계수나무가 있다는 달을 생각하고 공상했다.

올려다 볼 수는 있지만 아무나 계수나무를 가까이서 느낄 수 없고,

알아 볼 수 없는 상상속의 계수나무를 나는 아름답다며 걷고 있다.

팔을 내리고 두 손을 살짝 치켜든 우아한 발레리라 같았다.

막내이모에겐 미안하지만 동요를 속으로 불러보았다. 고우면서 슬픈 선율에 마음이 들뜨며 시리다.

약수터엔 몇몇 상점들이 70년대 서울의 판자촌처럼 바짝 붙어있었다.

옛날엔 사람들 발길이 줄을 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퇴락해 한곳만 식당 문이 열려있었다.

작은 양동이 만하게 파인 바위 속 붉은 약수, 물맛은 녹슨 쇳가루를 휘휘 섞은 탄산음료같다.

위장병과 피부병엔 특효라는데 막내이모 병에도 특효를 발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밥을 할 때나 반찬을 만들 때도 약수를 이용하고 세수도 하고 입안도 헹구라고 한다.

우린 똑같이 우르르 입안을 헹군다.

넷째이모는 무좀도 낫겠네 하며 발을 씻는다. 나도 습진이 있는 발을 씻었다.

 

안내자는 산길을 알려준다며 앞섰다.

약수터 계곡 샛길로 올라 왼쪽으로 가면 편안한 산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힘든 오솔길이라고 했다.

막내이모가 왼쪽을 선택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시뻘건 페인트를 척척 칠한 집이 나왔다. 소나무 민박집이란다.

넷째이모가 무당민박집이면 딱 맞겠네, 해서

막내이모도 나도 맞장구를 치며 큰소리로 웃었다.

산길은 흙길이었다.

그 길 중간 중간에 멋스러운 집이 두 채. 위에서 내려다본 정원이 무척 아름답다.

막내이모네 정원도 무척 아름다웠다.

계절마다 꽃이 만발하고 연못에는 수련이 동동 떠다니고,

앞엔 넓은 밭과 계단식 논이 보이고 뒤엔 야트막한 산,

그 산에 이름 모를 새가 아침이면 호로롱 호로로롱 노래를 불렀는데...

 

산속 길엔 다리 긴 미인 송과 향긋한 소나무와 씩씩한 전나무와

처음 보는 활엽수들이 어우러져 온통 그늘 길이었다.

우린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바위틈에선 다람쥐 두 마리가 숨바꼭질을 한다.

막내이모가 또 웃는다. 동물을 좋아하는 이모는 다람쥐와 눈을 맞춘다.

어디가지 말고 꼭 여기서 놀아라. 매일 보러올게

넷째이모가 다람쥐에게 부탁을 하고 산길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주인아줌마는 나물을 뜯으며 이름을 가르쳐 준다.

청미래 넝쿨, , 산 뽕잎, ,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아주 쓴 나물과 나물들.

소나무 잎도 땄다. 밥을 할 때 넣어서 믹서에 갈아줘야겠다.

산나물과 약수가 이모 병을 씻어 줄 거야.

 

사방 먼산주름이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사이로 두 줄기 계곡이 흐른다.

계곡이 만나는 곳에 계수나무 민박집이 있다.

그 곳에 진심으로 막내이모를 대하는 주인아줌마가 있고, 마광수 닮은 주인아저씨가 산다.

그 곳엔 병이 나아 시골집으로 돌아가면 심고 싶다는

막내이모 마음에 한 가닥 희망을 준 계수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