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예전부터 갖고싶어하던 접시 몇장을 샀었다.
딱히 살림살이에 욕심이 있거나하지는 않는데 유독 접시와 머그컵엔 눈길이 간다.
그저 예쁜 접시에 쿠키 몇조각...머그컵 가득 따뜻한 차 한잔...그 풍경이 좋다.
혼자 책을 읽을 때도...컴퓨터 앞에 앉아 이리저리 웹서핑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시간 가는줄 모르고 친구랑 수다 떨 때도..그 자리에 함께 하는 풍경..
미국에 나가있던 아는 동생이 한국에 다시 들어오면서 예쁜 그릇이며 살림살이들은 몽땅
싸들고 들어왔다.
커피 맛있게 끓여준다고 오라길래 갔다가 은은한 파스텔톤의 꽃과 나비가 가득한 접시와 머그잔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세일기간에 맞춰 맘먹고 왕창 사들고 들어왔다는 그릇들을 보며 나도 미국 갔다오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백화점에도 입점되어있긴한데 가격차이가 너무 컸다.
접시 한장에 몇 만원씩 주고 어찌 사누...
그렇게 마음에만 담아두고 가끔 백화점 갈때마다 들러 구경만하고 나오던 차에 얼마전 인터넷으로
구매대행이란걸 해서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처음엔 노란색 꽃과 파란색 나비가 나풀거리는 접시가 제일 이쁘다고 생각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연한 보라색수국이 가득한 접시에 마음이 자꾸 갔다.
난 보라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난 수국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접시가 제일 이뻐보이고 제일 애정이 가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취향도 바뀌는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제 저녁....설겆이를 하던중에 그 보라색 수국접시를 씻다가
별안간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릇 하나.
어릴적....엄마의 그릇장 속에 있던 수국그림의 그릇.
그게 접시였는지 스프볼이었는지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연보라색의 수국 모양만은 선명하게 머리속에 떠올랐다.
내가 씻고 있던 이 접시랑 그림이 똑같지 않은가....
아주아주 오래전...그 그릇이 얼마동안 우리 식탁에 오르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적어도 30여년은 훌쩍 전의 일인데 그 기억이 머릿속 한쪽 켠에 잠자고 있다가 불쑥
떠오른 것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보라색 수국접시를 처음보면서도 아주 친숙하고 아주 정감이 갔던 건
그 이유때문이 아닐까싶다.
가끔 TV를 보면 최면치료라든가 최면요법 하는 걸 보게 된다.
저게 과연 정말일까? 정말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저렇게 저사람 말 한마디에 떠오르는 걸까?
그동안 자기도 인식 못하던 무의식의 세계에 갇혀있던 기억이 저렇게 순식간에 나타난다고?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면 하는 것이지 기억 못하다가 저렇게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건 또 뭐야?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 속의 많은 방들 중에 잊혀진듯 차곡차곡 쌓여있던 기억 하나가
갑자기 불이 켜지듯 확~하고 떠오르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의 기억...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무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