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데도 그리 춥지 않은 날씨에
엄마는 어제 가볍게 떠나셨답니다.
평소에 무거운 육신을 감당키도 버거워하셨는데
화장해서 가볍게 보내드렸답니다.
선산 솔바람 부는 언덕 양지 바른 곳에
수목장으로 엄마를 모셨고요.
작은 돌판에
\"김 00 여사
한알의 밀알이 되어
이 곳에 잠들다.\"
그렇게 새겨 두고 내려왔답니다.
글귀는 제가 적었고요.
우리들의 밀알이셨으니까요....
그 누구보다도 떠나보내기 힘들었던 제가
그렇게라도 엄마를 곁에 두고 싶었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 깊은 골짜기에서 우는 겨울바람보다 더 울고싶지만
더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엄마가 그런 제 모습을 원할 것 같으니까요.
딱 일주일만 고생하시고 평온하게 잘 가셨습니다.
엄마 안녕....
목 울대를 타고 뜨거움이 밀려 오지만 참을 수 있습니다.
엄만 제가 슬픈게 가슴아프다고 하셨거든요.
오늘도 엄마가 뭍힌 산에는 따스한 겨울 낮 햇살이 내려 앉을 겁니다.
제 외손녀는 낳던 날만 봤는데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고
엄마는 그 자리를 비워주고 그렇게 가셨답니다.
오는 날이 있으면 돌아 갈 날도 있다지요?
향년 88세...힘든 여행이었지만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시고
평온하게... 오래 고생 안 하시고 돌아가셨답니다.
자식들 고생 시킬까봐 조금만 마음 아파하라고
딱 일주일만 병원에 계시더니 자식들의 효도를 한꺼번에 과하게 받으셨네요.
살아생전 그런 효도는 받아 본 적이 없으셨는데......
건강하실 때 더 좋은 곳에서 못해 드렸던 호강을
느끼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병원에서 장례식장에서 다 해 드린 못난 자식들이었답니다.
대학병원 하루 특실료면 살아생전에 엄마를 호텔에서 재워드리고도 남을 돈인데...
장례식장 빈소 vip실 하루 사용료면 멋진 펜션에서 엄마를 호강시키고도 남을 돈인데....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남아도 그래라도 엄마를 보내드리고나니
돌아오는 제 발걸음이 덜 무겁습디다.
엄마를 26년간 모셨던 막내 올케가 어무이 안 계신다고 우리집에 안오면 내 섭섭할끼다 고모야...
어무이 계실 때 처럼 자주 오고 그래야 된데이....
절 붙들고 울던 올케가 고맙더라구요.
엄마 살아생전 이런저런 불만도 제게 털어 놓던 올켄데 후회가 많은 모양이더군요.
당뇨때문에 채식을 주로 했던 엄만데 가난해서 엄마한테 고기반찬 자주 못해드렸다고
막내오빠가 발인식 때 엄마관을 붙들고 통곡을 하더군요.
그 누구보다도 고생하고 힘들었을 막내오빠네였거든요.
고맙다고... 제가 못한 효도를 다 해 줘서 고맙다고 안아드리며 위로하고 돌아서는데
맏이면서 엄마를 못 모신 죄책감에 큰오빠가 꺼이꺼이 못 놓아 웁니다.
그 옆에 큰 올케는 또 용서하시라고 같이 웁니다.
둘째오빠는요??
다른 오빠들보다는 좀 덜 우시네요.
세째오빠는 음....
엄마 살아생전에 가장 애 먹이던 오빤데 수시로 설움이 북받히는지
엄마 영정사진 앞에서 혼자서 소울음을 웁니다.
유일하게 임종을 지킨 아들이거든요.
네오빠들과 제가 교대로 엄마를 지켰지만
임종을 지킨 아들은 정작 가장 애 먹이던 세째 오빠였답니다.
아마도 엄마는 그런 세째 아들이 제일 안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있어 혼자 사는 오빠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오빠들이 한꺼번에 온통 효자효부가 되어갑니다.
그러고보니 상주석에서 우리 남편도 눈이 씻뻘게지도록 우네요.
우리가 힘들 때 마다 엄마는 걱정만 한가득 해 주셨지만
그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는데 이제 그럴 엄마가 없네요.
이름난 맛집에도 못 모시고 갔었고 비행기도 못 태워드린게 안타까워서 운다네요.
친척 언니가 그러네요.
사위가 저렇게 서러운 집은 처음본다고...
친정아버지 장례 때도 저렇게 서러웠던 남편입니다.
결혼하고 막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때는 번듯하게 살아드리는 모습도 못 뵈드려서 운다더군요.
외동딸 잘 사는 모습을 못 보여드린게 그렇게 아쉽더라던 남편.
이제는 그런 친정 부모님들 다 돌아가시고
경주 땅이 외로울 것 같은데 자주 가 질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