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사는 게 즐겁다. 산다는 게 즐거운 것이라는 걸 난 이제야 알게 됐다. 삶이란 살아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는 맛을 느끼며 사는 게 삶이다.
명퇴를 결심했을 때 난 망설이지 않았다. 노후를 걱정할 만큼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업을 붙들고 있을 만큼 즐거운 게 없었기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살아내는 게 아니라 사는 맛을 느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려면 내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때 그만 두는 게 좋을 듯했다. 내 마음속에서 꿈이 흐지부지 흩어진 다음에 그만 둬봐야 소용이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난 즐거움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꿈을 붙들고 힘겹게 씨름해야 할 거라는 생각만이 내 안에 있을 뿐이었다.
헌데 지금 난 내 꿈을 쏟아내며 즐겁다. 이거였어. 그래 내가 원했던 건 바로 이거였어. 비로소 사는 맛이 내 안에서 느껴진다. 글을 쓰고, 쓴 글들을 카페와 아줌마 닷 컴에 올리며 난 하루하루가 즐겁다. 간혹 시장에 가서 사가지고 온 것들을 용도에 맞게 갈무리하는 것도 내겐 즐거움이다.
이런 즐거움들에 요즘엔 또 다른 즐거움들이 보태졌다. 산에 가는 재미, 물 떠오는 재미다.
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주어진 행운이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이 30여분 정도니 산책하는 거리로는 딱이다.
첫날만 해도 낯이 설었다.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랬는데 10여일이 지나고 있는 지금은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설렘으로 내 마음이 상기되기까지 한다.
산 입구에 들어서면 솔향이 은은하게 내 코를 자극한다. 난 깊이 들이마시며 ‘좋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뇐다. 가파른 산길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나는 한 발 한 발 천천히 옮긴다. 산이 날 알맞게 붙든다.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솔향에 취해 걷다보면 호스에서 맑은 물이 퀄퀄 쏟아지는 절마당에 닿는다. 이제 나도 제법 여유를 부릴 줄 안다. 첫날처럼 샘으로 가서 물만 통에 채운 후 서둘러 내려오지 않는다.
먼저 의자로 가서 앉아 나무들이 뿜어낸 맑은 기운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닦아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숨쉬기에 열중한다. 비구니 스님이 거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내 마음도 긴장을 거의 내려놓았다.
그렇게 앉아 있노라면 세상에 대한 욕구도 내려진다. 오로지 나무들에 둘러싸여 숨 쉬고 있는 나만이 덩그라니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도 간간이 와 의자에서 쉬다가 물 한 바가지 떠 마시고는 나머지 여정을 떠난다. 그런 사람들과 인사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낯설었던 타인들이 내안으로 한 발짝씩 다가온다. 낯익은 얼굴들이 차츰 많아진다.
일어나고 싶지 않다. 무념무상의 세계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헌데 일상의 내가 내려가야 한다고 채근한다. 그럼 일어나서 물가로 가 가방을 푼다. 물통을 하나하나 꺼내 씻어내고 물을 가득가득 담는다. 물통 수도 첫날보다 늘었다. 가방을 짊어진다. 물의 무게가 어깨를 살짝 내리누른다. 그래도 견딜 만한 무게다.
집에 오면 난 물을 냉동실과 김치 냉장고로 보낸다. 그냥 마시기도 하지만 얼렸다가 녹여 마시는 게 더 좋을 듯해 그렇게 하고 있다. 김치냉장고 한쪽도 생동으로 해 놓고 김치통에 얼음물을 쟁인다. 김장때 쓸 물을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수돗물도 가스비도 절약이 된다. 일석삼존가? 건강도 챙기고 절수도 하고 가스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맞는 모양이다.
정말 내가 둥지를 잘 틀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의지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발령이 이곳으로 나서 옮겨왔을 뿐이었다. 헌데 이젠 그런 수동적인 사고는 온 데 간 데 없다. 내 삶에 주어진 행운이었을 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바다와 산과 계곡이 다 갖춰진 동네가 어디 그리 많겠는가. 난 그 몇 안 되는 곳에 내 둥지를 틀었으니 이만하면 족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