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큰 손주라고 어른 양복을 입혀 놓았는데도, 키가 커서 그런지 제법 어른 티가 난다.
열다섯살이 뭘 알까싶었는데, 녀석이 뚝뚝 쏟아내는 눈물방울이 금새 까만 상복위로 흐른다.
눈물을 참아보겠다고 숨을 참는지 앙다문 입술 사이로 더 크게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달래줄 수 없다. 달래지 않았다.
녀석이 울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차마 그 떨리는 어깨를 감싸주지 않았다.
녀석이 도리어 내 어깨를 안아준다.
널 처음 낳았을 때 할머니가 얼마나 널 애지중지하셨던지,
부서질까 차마 그 작은 몸 가슴에 깊이 안지 못하고,
행여 옷에 묻은 먼지가 갓난아기한테 옮기라도 할까봐 두 손으로 살포시 안아서 겨우 무릎위에 놓고
그조차도 애기 힘들어할까봐 이내 폭신한 이불위에 내려놓으신 할머니였다.
그리고, 좋아하셨다.
외손녀딸이 아들을 낳았다고, 증손주가 생겼다고,
당신 몸 고달픈거 생각않고 매 끼마다 소고기 넣은 미역국을 끓여다 내 앞에 바치셨다.
네가 울면 그저 안아주실 뿐,
분유 어떻게 타는지 몰라서 타주지도 못한다고, 이런것도 배우지 못하고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네 울음이 잠깐이라도 길어지면 당신이 못배워서 그런다고 가슴 아파하셨다.
네 사진을 안방이며 거실이며 벽마다 붙여두시고
그걸 보면서 그리움을 달래셨던 할머니다.
시골에 간다고 미리 전화하면 그때부터 우리 얼굴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그 날은 새벽부터 문밖을 들락날락 하시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할머니다.
밥 많이 먹어야 한다며 밥을 산처럼 쌓아주시던 할머니다.
이 거 맛있네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 후로 우리들이 갈때마다 어떻게든 그걸 만들어 놓으신 할머니다.
내가 나이 많아서 할 줄 아는게 없다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지 못하는걸
마음아파하셨던 할머니다.
당신은 드시지도 않는 초코파이랑 딸기우유를 너희들 주려고 냉장고에 채워두시는 분이셨다.
당신 드시라고 베지밀 두어박스를 사다드리며, 우리 올라올 때 기어코 봉지에 담아서
가는 길에 먹으라고 차에 넣어주신 할머니다.
맛있는 사 드시라고 용돈이라도 드리면, 기어이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고사리손마다 용돈을 쥐어 주시고, 안 받아가면 눈물 글썽이던 할머니시다.
우리가 내려가면 너네들 보기만 해도 재미나다며 방에 앉아서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바라보던 할머니다.
절대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던 할머니다.
집에서도 많이 할텐데, 잘난 친정에 와서도 또 설거지하냐며...
해주는거 없어도 자주 오라고 , 내가 따스한 밥은 꼭 해줄테니, 서운해하지 말고 오라고
당부하셨던 할머니다.
굽어진 등으로 밭에서 캔 감자를 아껴두고 아껴두었다가 손녀딸이 내려가면
다 퍼주시던 할머니다.
그렇게 바지런 하던 할머니도 아흔을 넘기시면서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시고
거동을 못하실 정도가 되었다. 그 소식에 놀라서 내려가 한참을 할머니 부여잡고 울었다.
그래도 걱정하지말라고, 밥 먹고 가라고, 밥먹으라고, 내가 못챙겨줘도 밥은 먹으라고
신신 당부를 하시던 할머니다.
곧 또 올테니 할머니도 잘 드시고 계시라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올 여름,
전셋값 올려달란 집 주인의 전화에 다소 무리를 해서 이사를 했다. 급하게 이사날짜가 잡히고
그렇게 2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나중에 알았다. 그 2주일간 할머니가 급격히 악화된걸...
이사하고 나서 일주일 후 동생 전화를 받았다.
\'누나, 할머니가....할머니가...숨을 안 쉬어. 아무리 흔들어도 숨을 안쉬어.\'
동생 울음소리에 섞여 난 울 수 조차 없었다.
내가 이사할 때까지 그때까지 기다려준거야?
폭풍처럼 내리는 빗속을 뚫고 시골로 내려갔다.
내 후회되는 마음 위로하고자 우는 것 같아 그런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앙다문 입술사이로 자꾸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할머니, 갓난아기였던 녀석이 지금 할머니 영정 앞에서 울고 있는거 보여요?
할머니는 우리들 모두 보고 있는거야?
그런데, 난 아무리 눈 감아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요.
꿈에라도 한번 나타나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낮이나 밤이나 눈감아도 보이지 않아요.
텅 비어버린 할머니 방을 보면 아직도 거기 그렇게 할머니가 있을것 같은데,....
할머니, 추석이 되어서 그런가?
여느때라면 과일 잘 받았다고, 이 귀한걸 이렇게 많이 보냈느냐며 , 내가 우리 손녀딸 때문에 산다고
하셨을텐데, 이젠 전화가 안오네.
난 오늘도 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게 되네요.
할머니는 늘 우리 손녀딸 때문에 산다고 하셨는데, 난 할머니를 위해 살았을까?
할머니, 미안하고, 거긴 좋지요? 편안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