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쌀쌀하게 느껴지는 공기는 여름답지 않던 여름이 이미 저만큼 물러가고 있음을
알리는듯하여 섭섭한 요즘이다.
아이가 방학중이니 밥 챙겨먹이느라 모든 외출을 미루다시피하는 요즘이었다.
사춘기랍시고 제대로 엄마 열받게 하는 아들과 하루종일 지지고 볶다보니 잠깐의 외출이 절실했다.
그간 미루던 볼 일도 볼겸 바람도 쐴겸 겸사겸사 일을 마치고 백화점엘 들렀다.
1층에 즐비하게 있는 명품샵들을 지나치는 순간 앞서 가는 한 커플의 다정한 모습이 순간 눈에
확 들어온다.
하늘하늘한 원피스의 가녀린 체구의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명품으로 휘감았다.
그녀의 원피스 색깔과 같은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인 손톱을 가진 그녀의 손은 남자의 손에 살포시 쥐어져 있다.
그 남자의 또 다른 손엔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핑크 여행가방과 샤넬 종이 봉투가 들려져 있다.
돌아보니 방금 그네들이 나온 곳이 샤넬 매장인가보다.
그녀가 지금 메고 있는 가방도 샤넬이다.
남자는....세련된 느낌의 중년이다.
왠지 그들의 분위기가 부부같지는 않다.
길거리나 음식점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우스개처럼 저사람들은 부부가 아닐꺼야..라고들 한다.
난 그 말이 참 싫었다.
부부는 왜 손을 잡고 다니면 안되나?
정말 좋아서 손잡고 다니는 부부도 있지 왜 그걸 색안경 끼고 보는건데?
하지만 나도 가끔은 정말 저 사람들은 뭘까? 싶은 경우도 종종 본다.
남의 사생활이니 궁금해 할 필요도 없지만 어째 좀 씁쓸하다.
살림사는 여자는 손톱 기르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요리를 해야될 손에 손톱을 기르고 메니큐어를 칠하면 여간 부담이 되는게 아니다.
하물며 제 몸 하나 예쁘게 치장하고 꽃같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내가 아니고 애인이라면 남자를 위해 예쁘게 치장만 하면 될 일.
남자가 맛있는 것을 사줄테고 갖고 싶은 것을 사줄테고 그러고도 예뻐 죽을테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새로 나온 영화 리뷰로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 관한 글을 읽은 터였다.
러시아 출신 망명가였던 스트라빈스키는 그에게 흥미를 보이는 샤넬의 저택에 머물게 된다.
스트라빈스키는 아내와 네 아이가 있었지만 샤넬의 매력에 빠져든다.
게다가 관습, 전통,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던 샤넬은 그의 가족과 한집에 살면서
그와 열정을 나누는 것에 대해 그의 아내에게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애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둘의 사랑은 아주 열정적이고 거칠 것없는 정열적인 사랑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도덕하고 불륜적이며 분통터지는 일이다.
샤넬 자신은 자유롭게 살았을 것이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사랑했을 터였고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영혼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로인해 상처 받았을 숱한 아내들은 어떠했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부와 명성을 다 이루었다.
샤넬 가방은 최저가 라인이 3,4백만 원대이다.
그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위시리스트 1위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본디 샤넬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여러가지로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