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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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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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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BY *콜라* 2011-04-15

서울에서 엄마의 진료를 마치고

용인으로 돌아와 막 옷을 벗고 있을 때

거실 유리문에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렸다.

조금 전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 간 택시 기사다.

화장실이 급하셨나? 해서 문을 열었다.

 

저기 돈을 잘못 주셨어요…”

 

분명 미터요금에 톨게이트비와 약간의 팁도 드렸는데

잘못 받았다며 지폐를 내밀었다.

 

마지막 항암 결과 확인 진료가 있던 어제

병원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친구의 차가

우리 집 근처  신호대기에서 사고를 당해 영업용 택시를 이용했었다.  

 

서울서 용인까지는 시외구간이므로 미터요금과 정액제 중에서

미터요금을 원하는 택시를 타고 시내를 벗어 날 즈음

무슨 까닭인지 기사 아저씨는 갑자기 과외요금을 달라고 말을 바꿨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약속을 깨는 행위는 이유막론, 받아들일 수 없고

더욱이 한쪽이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다음 이런 식의 통보는

화가 날 수 밖에 없어 직설화법이 나왔다.

 

당황한 아저씨가 더듬더듬 하는 변명은.

 

아니,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제가 택시 한지 얼마 안돼요.

저기 택시 운전자격증보시면...

 

218, 아직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선배 운전기사들에게서 시외운행에 대해 듣긴 했던 모양이다.

 

초보라서 정확히 모르신다는 점은 이해 하지만 할증적용 하시려면 사전에 말씀하셔서

제가 선택하게 하셨어야죠. 아저씨가 선택해 놓고 딴 말 하시면 손님이 가만있겠어요?

저도 아침에 사고가 나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다 하루 종일 진료하느라 지쳐서

너무 직설적인 표현은 죄송해요.

좀 심하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사과를 겸한 이런 저런 말을 걸었다.

 

연세도 있으신데 하필 뒤늦게 힘든 개인택시를 하시게 되셨어요?

아, 요새 며느리들 개인택시 운전하는 시아버지가 인기순위 1위라면서요. 허허허~.

그런 말도 있어요?

 

시부모 용돈 안 줘도 되고 잘 하면 용돈도 얻어 쓸 수 있고.

내 친구는 매월 빳빳한 만원권 열 장 바꿔서 꼭 너를 위해 쓰라고 며느리 주면

아주 좋아한대요.

구겨진 돈이든 찢어진 돈이든 시아버지가 아무도 몰래 주는 돈이라면

그건 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걸 좋아하지 않을 며느리가 세상에 있을까.

 

아저씨는 초보티 내신 김에 확실하게 알고 싶어신 듯

서울 병원서 용인 집까지 거리와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요금은 알지 못하지만 거리는 정확히 54.5km이며, 운전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출퇴근 시간엔 미터요금제, 낮 시간엔 정액제가 유리하실 거라고.

따라서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오후 5인 현재 시간은 미터요금제가

아저씨께 유리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올해 85세 된 노모가 계시다며 엄마 연세를 물으셨다.

 

한국 사람은 고향과 어머니라는 주제앞에서 무조건 마음이 열린다.

노모의 병환과 효도이야기. 택시운전자격증에 적힌 대길이라는 이름

어느새 집에 도착해서 아쉽게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되돌아 오신 것이다.

 

신호대기에서 꺼내보고 잘못 주신 걸 알고 되돌아 왔습니다.

돈 맞춰 드렸는데요 ? ??

  

분명 미터기 요금 45천원에 톨게이트 비용과

감사하다는 의미의 약간의 추가금액을 얹어 7만원을 드렸는데

늘 돈계산 못하는 내가 또 실수를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돈을 부채모양으로 펼쳐서

다시 헤아려 보아도 지폐 7, 분명 7만원이 맞다.

 

내 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당당하게 돈을 다시 아저씨게 내 밀었지만

아저씨는 정확한 설명도 없이 많이 주셨다는 말만 하셨다.

 

손에 든 돈을 만지작 거리며 

분명 7 맞는데....  7장....

, 5만원권 7장, 35만원이다.

 

내가 한국을 떠나있는 동안 발행된 5만원권 지폐는

사용은 물론 구경 한 지도 오래되지 않아 1만원권으로 착각을 한 것이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약간의 돈을 드렸지만

거절하시곤 황급히 7만원만 챙겨서 떠나시는 아저씨를 보낸 다음

한편으로 혹시 내가 그분 이름을 너무 정확히 알고 있어서 되돌아 오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내 탁해 진 마음을 뉘우쳤다. 

 

설사 이름 안다 해도 찾으려면 시간낭비, 정신적 낭비가 심할테고

찾을 시간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돈을 잘못 준 것을 알지 못한 채 랄라룰루하며

캐나다로 떠났을 수도 있는데 횡재한 기분이다. 

 

세상은 아직 따끈한 양심을 품고 사는 분이 있기에

내 주머니 돈도 못 세는 얼치기 숫자치가 운 좋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리고 빅 히트는

그날 밤 마실오신 이웃집 퇴직교장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할머니 집 앞에 영업용택시가 오래 서 있기에 수상한 마음이 들어서 내가 차 넘버 적어 놨어요.

차 넘버 알고 이름 아는데 그 아저씨 돈 가지고 온 건 운수좋은 거에요... \"

ㅋㅋㅋ 정말 기사아저씨도 나도 운수 좋은 날이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