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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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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을 만나는 건 미친 짓이다(1)


BY *콜라* 2011-02-24

지난해 네이버 메인 뉴스에 뜬 옛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며

정작 내가 떠올린 사람은 첫 사랑 남자였다.  

 

잔영조차 아련해 진 그를 배신한 건 나 였는데 

때늦은 미안함이 드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드물게라도 그리움으로 떠올린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현재 진행형의 남자인양 맘살이 찾아왔다.

 

그 며칠 후, 뜻밖에 엄마로부터 그의 소식을 들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반가움보다 

수십년의 시간을 지났음에도 같은 시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텔레파시의 교감이 두렵고 떨렸다. 

  

고향 시골 집으로 찾아 온 그가 나를 찾는다고 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92년쯤, 20년 전이다.

왜 만났는지 기억 할 수 없지만 

그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얘를 보는 사람들이 인형이야 사람이냐고 물어..… ”

 

첫 돌이 지났을까? 싶은 그의 딸 사진이었다.

6년 동안 목숨처럼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군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말년에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던 내게 하는

복수 였을까.  

그때까지 나는 영원히 ‘너는 내 남자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예쁘다 . 네 딸이구나 축하해

한 마디쯤 폼나는 인사를 건넬 수도 있었는데

너가 어떻게 감히 나한테 딸 사진을 보여 줘? 하는 터무니없는 화가 치밀어

끝내 축하를 해주지 못한 채 일어서고 말았다.   

 

돌아 오는 차 안에서 가슴에 생채기가 난 듯 아려왔다.

내가 가장 아끼던 물건을 친구에게 준 다음

시간이 지나 아까워진 아이마냥 한 나절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선이 그어졌다.

\"이 남자 이젠 나와 상관없어진 사람이구나…… \"

 

차라리 다행이었다.

내 마음 끝자락에 들러붙어 있던 미안함과 착각을 완전히 걷어내고

감정의 깊은 골에는 나를 미치게 하던 다른 사랑이 채워졌다.

이후 그를 다시 생각할 여유 없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 잊어 버렸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같은 반 친구의 시골 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던 버스 안이었다.

친구는 중학교 동창이라는 한 남학생과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듯 했지만

첫 느낌을 중요시 하는 내게 강력한 느낌 없는 사람은 

관심밖이었고 금세 잊어버렸다.  

 

그러나 꼭 만나야 할 인연은 때로 긴 시간을 돌아서라도 이어지는 법. 

이후 학교, 학원... 내가 만나는 사람움직이는 동선까지 파악한 그는

내가 가는 곳 어디든 나타나 놀라고 질리게 만들며 1년 가까이 주변을 맴돌았다. 

미워하며 정든 걸까. 한지에 먹이 스미듯 그는 조금씩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3.

 

시골 면사무소 말단 공무원 박봉에 

도박으로 몇 뙤기 남은 자갈 밭까지 탕진한 아버지는

딸의 미래도 도박 빚에 저당 잡힌 걸 까맣게 모르게 계셨다.  

 

고3이 된 나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도, 의논할 이도 없던 내게 대학 진학은 꿈이었고 

설사 대학에 입학한다 해도 축하 해 줄 사람 하나 없는

나는 홀로 섬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성질머리와

휘어지길 거부하는 자존심은 내 삶을 더욱 힘겹게만 하고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할 것 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하는 고민보다

당장 오늘 어떻게 살 것 인가 먼저 해결해야 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막내인 나의 희생을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수재로 이름 드높던 오빠의 서울 대학 뒷바라지만으로도

엄마의 고생은 극에 달해 있었으니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쓰던 날도 담임 선생님의 설득을 뿌리치고 

야간 고등학교에 원서를 냈고

다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낮엔 웨딩 숍, 가구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과 생활비를 해결하던 

현실 속 나는 결코 신데렐라가 될 수 없는 재 투성이의 촌뜨기 였지만 

돈이 목표가 되는 삶은 죽어도 싫었다.

원대한 꿈이 어쩌고 하는 거창한 이유를 댈 것도 없다.

징글징글한 가난에 대한 반항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꿈이 가슴속에 있었다.  

 

사랑에 대한 생각도 그랬다.

당장 버스비를 걱정해야하는 가난이 당시 나를 대변하는 상징이긴 해도 

현실 때문에 주눅들거나 사랑따위 라며 감정을 격하시키는

자학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감정에 거침없는 당당함으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며

사랑만은 내가 주도하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런 내 삶에 허락도 받지 않은 그가 끼어들었다.

 

그는 참 억세게 운도 없었다.

아무것도 내 세울 것 없는 주제에 성질과 자존심만 남은 나를 만난 것도 그랬고 

이전까지 그림자만 봐도 소스라치게 싫어하다가  

하필 고3, 그 중요한 시기에 내 마음이 열린 시기도 그랬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그를 처음 찾아 간 나를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바라보던 그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이전까지 그의 일방적인 사랑이었다면 그날부터 시작된 사랑은

서로를 향한 진짜 사랑이었다.

나는 진학을 포기했지만 입학 시험을 함께 치르고 대학생이 된 그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만큼 끔찍하게 사랑하며

한 순간도 서로를 놓지 않는 시간이 수 년간 이어졌다.

 

우리의 결혼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고

그가 아닌 내 마음이 변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오래 살아 온 부부 같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 같기도 한.

깊고 아픈 인연이 이어졌다.

 

산골인 우리 집을 가는 날엔 그의 등에 업혀 비포장 산길을 걸으며 행복했던 나... 

아파서 병실에 누워 있을 때나 힘들 때도 언제나 내 곁을 지키던 사람은 그였다.  

 

세상 누구도 나의 털끝 하나 건드리는 걸 용납하지 않으며

무조건 내 편이었던 그의 사랑에

부모님조차 그의 앞에서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보호해 주던 그에게

단 한마디 설명도 없이 잠적하는 것으로 나는 이별을 고했다.

 

다른 남자가 생긴 것도 아니고, 멋진 꿈을 이루기 위한 청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며

혼자 살아 갈 경제력이 생긴 건 더욱 아니었는데

왜 .... 왜 나는 그를 떠났을까.

돌아보면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 였던 듯 하다.  

 

내 생애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함께 한 그 남자를

다시 만난 건 2011년 2월의 첫 날 이었다.

 

 

첫 사랑을 만난 건...

미친 짓이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