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에 의하면 내 전남편은 신혼생활에 아주 행복하단다.
둘이 여행 다니기 바쁘고 얼굴이 아주 좋아졌다고 한다.
두집 살림에 안절부절하던 시절에는 얼굴이 까맣게 타들어가더니만 이제 흰얼굴로
변모를 하였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마누라는 하나만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겠지.
다행이다.
정말이다.
남의 행복을 내 불행으로 여기는 옹졸함은 갖고 싶지가 않다.
언니는 나의 강한 성격을 지적한다.
못된 성격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 같았다.
예전에 엄마가 나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다시 한다.
그 말을 한번만 더 하면 열두번인거 알지?
나는 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아마도 그랬을것이다.
같은 말을 여러번 잔소리 하실 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만 좀 하지.
버릇없는 딸이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고집스런 아이였다.
엄마는 언니의 말을 잘 들으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나보다 삼년 먼저 나왔다는 이유로 내가 순종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늘 반항했다.
언니가 공부를 한다고 안방에 상을 펴고 앉으면 꼼짝을 하지 않고 내게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마지막에 내가 한말은 걸작이었다.
내가 개냐. 네 일은 네가 해라.
언니는 울고 나는 웃었다.
해서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나는 잔소리 하지 않는 엄마가 되었고 잔소리 하지 않는 아내가 되었다.
그런 나에 대해서 그 사람은 불평을 했다.
잔소리가 그리웠던게다.
관심이 없고 사랑이 없기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잔소리와 사랑이 직결한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못했다.
무관심은 아니었음을 알지 못했다.
각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내 지론때문에 냉정한 사람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자기가 알아서 바람을 피우라고 말한적은 없었지만 그는 그리했다.
사랑이 고팠던게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척도란 나와는 달랐으니까.
딱 달라붙어서 하는게 사랑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개가 하는 사랑과 무에 다를것이 있느냔 말이다.
잔소리 많은 그녀의 사랑을 만끽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미망인이 된 언니는 외로움을 하소연한다.
언니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없다.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일밖에 해줄것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할 일이 따로 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며 누구의 힘이 되어 줄수 있을지...
그것은 한계가 있다.
인간은 다 각자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너무나 기대치가 많다.
왜 남에게 의지하려 드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도움을 청하면 달려가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음을 안다.
언니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TV를 보는 시간을 나는 오래 견디지를 못한다.
나는 자꾸 내 컴이 있는 내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곳에 내 일용할 양식이 있을것만 같다.
밤새 눈이 내렸다.
봄은 또다시 저만치 물러나 앉았다.
종일 컴 앞에서 소설을 쓴다.
소설은 사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기를 치고 있다.
그럴듯한 사기를 치려니까 머리가 아프다.
제대로 된 사기꾼이 되어보겠다.
그것이 하나 남은 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