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공원 연인산 깊은 골,
소망능선 초입에 자리 잡은 백둔정방 암전문요양원은
가평버스터미널에서 화천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20여분 달리면
즐비하게 줄지어 선 팬션들이 어지간히 끝날 즈음 \'백둔교\' 작은 다리를 건너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 민가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유난히 잣나무가 많아 ‘백둔리’라 불리는 이곳은
잣나무 숲이 병풍처럼 집을 에워싸고
집 앞으로는 물이 서서 내려간다는
깊은 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편백나무 뾰족한 잎새마다 내려 앉은 흰 눈이
한 낮 햇살 아래서도 얼음 꽃으로 반짝이며
유리처럼 맑은 공기가 가슴 속까지 파고 드는 요즘…
봄이 오긴 오려나 의구심마저 든다.
산새들과 배고픈 산짐승들까지 깊은 겨울 속에 침잠해 있는 주말아침
찾아 올 손님도 없건만,괜한 설레임에 달뜬 가슴을 추스리며
거울에 비친 나에게 자성적 예언을 한다.
“오늘은 즐거운 일이 있을 거야…”
모두가 암 수술 후 요양과 투병중인 사람들이기에
육식이 금기된 이곳에서 ‘맛 집’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음~ 음~’ 대는 오버액션이
환자가 아닌 민간인인 나에게, 또 이곳의 몇 사람에게 고문일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린 가끔 우리만의 만찬을 꿈꾼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엔…
환자들이 모두 잠든 야밤에 잣 껍질을 태우는 화목 난로에
호일에 곱게 싼 멧돼지 고기를 구워
감탄사를 삭이느라 숨을 몰아쉬며
범죄 모의 하듯 둘러 앉아 먹기도 하고
치킨을 사와 황토방에 숨어 먹기도 한다.
얼핏 한밤의 이 은밀한 범죄의 주동자가 원장님 같지만
엄격히 말하면 나, 콜라다.
몸에 좋은 야채와 유기농 건강식 앞에서
구수한 고기와 소금 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어쩌지 못해 눈빛을 번득이며
빈대라도 잡아 먹고 싶어하는....
불쌍한 중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기 조달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여, 토요일인 오늘 아침
식전부터 안동 소주병을 들고 주방을 부산하게 들락거리던 원장님…
느닷없이 쌀 한 줌을 달라고 하셨다.
“새 잡으려고 해요.”
소주에 불은 쌀을 새가 많이 모이는 곳에 뿌려 놓고
그 낱알을 먹은 새들이 술에 취해 쓰러지면 잡는다….
이론적으로 그럴 듯 해 보이고
언젠가 방송에서도 본 듯하여 기대 만발, 응원의 구호를 외치며 기다렸다.
평소 새까맣게 새 떼가 ‘벌떼’처럼 모여드는 쓰레기통 주변에 쌀을 뿌려 놓고
술 취한 새가 쓰러지길 기다렸지만
“저기…. 원장님! 소주가 독약도 아니고 … 아무래도 술 취한 새가 자기 집으로 날아가서 자는 것 같아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고주망태가 되어 혼수상태가 되어도 집은 찾아 가잖아요. ”
“………”
생각에 잠긴 원장님…..
작전을 변경하신 듯 읍내 시장으로 나가시더니 그물을 사오셨다.
점심도 거른 채 참새잡이 그물을 설치한 지 두어 시간..
노크 소리에 이어 “새 고기 드세요” 하는 게 아닌가.
“치킨 사오신 거 아네요?”
믿을 수가 없어서 밖에 나가보니
바짝 구워 앙상한 뼈만 남은 참새가 난로 위 돌멩이에 누워 있다.
“인체신비전 할 때 그 미이라 같아요… 원장님 드세요.”
“먹었어요. 세 마리 잡았으니까 얼른 드세요…”
ㅋㅋㅋㅋ
차마 냉큼 먹을 수 없어 주방으로 달려가 사모님 드시라고 했더니
눈으로 직접 보기조차 거부하며 질겁하셨다.
아싸!얼른 방으로 들어가 엄마를 일으켰다.
거두절미하고 입에 넣어드린 후 꼭꼭 씹으라고 당부했다.
“
엄마, 정말 무공해니까 혹시 약이 될까 하고…”
그리고 뒤늦게 원장님과 함께 참새 그물을 치던 분께 몇 마리 잡았냐고 물었더니
한 마리 잡았단다.
아….
한 마리 잡아서 나를 준다고 말하면, 미안해서 못 먹을 까봐
세 마리 잡아서 원장님도 드셨다고 하얀 거짓말을 하신 거다.
그렇게 애써서 잡은 한 마리를 엄마가 홀랑 드시게 해버렸으니 이런 왕민폐가 없다.
“원장님! 내일은 제가 아침 일찍 산으로 다녀올께요.”
“왜요?”
“곱게 화장하고 가서 산에 있는 참새들 설득해서 모조리 데리고 올게요……
얘들아, 나를 따라 오면 하얀 쌀에 담근 안동소주도 주고, 성인영화도 공짜로 마음껏 보여주께….
현영 버전으로 하면 오지 않을까요?.”
건강을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만났지만, 서로 경험을 통해 위로하고
피붙이 처럼 의지하며 또 다른 가족이 된 정겨운 사람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산짐승들도 잠든 고요한 연인산 계곡을 향해 잔잔히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