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정 아버지께선 전형적인 가부장적이고 오랜 군생활을 하신 탓에
가족에게 한없이 위협적이고 위압적이고 고압적이신분이다.
나 어릴적 우리 어머니께서 밥상 차리실때 내눈에 비친 밥상은 평등이 아니었다.
아버지랑 밥상을 겸상을 한적도 없었고
아버지 밥상과 우리의 초라한 밥상은 언제나 대조적이었다.
그렇다고 상아래 밥그릇 놓고 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그저 하녀로 보였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지만 너무나 범접하기 어려운 아버지 때문에 그냥 순종하고 살던 어린시절이 난 싫었다.
고등어구이중 가운데 토막은 언제나 아버지꺼 , 대가리는 어머니꺼
꽁뎅이는 우리들차지 였지만
철이 들어갈 무렵 전까지는 아버지의 말씀이 옳으신줄 알았다.
너희 엄마는 고등어 대가리를 제일 좋아한다.
그눈빛에 그 웃음의 의미가 소름이 끼쳐졌다. 철이 들면서는
철들기 전에는 정말 우리 어머니는 고등어 대가리 그 맛있는걸 혼자 드시는줄 알고
서로 눈깔 먹겠다고 6남매가 아웅다웅하던 기억이 나니 말이다.
대구대가리 아닌 다음에야 고등어대가리에 먹을게 뭐가 있을까?
난 지금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화가나서
왜 당신을 사랑하며 살지 못하셨을까?
왜 좀더 아버지로부터 당당하게 못사시고 늘상 수심 가득한 불쌍한 모습으로
연민속에 사시는지 그것이 화가 난다.
아버지가 싫다 싫다 미워하시면서도
아버지의 밥상은 없는 집에서도 푸짐하다.
안그러면 먹을게 없다고 상을 날려 버리셨으니 그러셨겠지.
특히나 명절이나 무슨날이 되면 우리들은 공포분위기에서 살았다.
생활비도 제대로 안주신 분이 상차림이 변변치 않다고 늘상 화를 내시고
상이 날라갔다.
그런 아버지께서 며칠전 우리집에 오셨을때 급한김에 김치랑 햄을 넣고 찌개해서 차려 드렸는데
아주 맛있게 드셨다.
아버지 맛있죠?
그래~
가만 생각해 보니 약한자에게 조금 강한자는 항상 군림하려 드는데 우리아버지 보시기에
우리 어머니는 그저 괴롭힘의 대상이었던것 같다.
아버지 목소리에 기가 죽어 눈빛이, 몸짓이 불안한 어머니를 대상으로 몇십년 폭력을 행사하신 것이다.
눈으로 말로 때로는 과격한 행동으로~~~~
나같으면 남편이 미우면 밥상부터 치워버릴것 같은데 우리 어머니는 안그러셨다.
지금도 일흔아홉의 아버지는 일흔둘이신 어머니를 하녀 대하듯 하신다.
어제는 좀 사이좋게 사시라고 한말씀 올렸다.
아버지께~~~
우리 아버지 다정다감한 남편이 아니셨고 오로지 당신 입에 ,당신손에 , 당신 발에 ,당신 머리에,
오직 당신뿐이신 그런 분이셨다.
지금도 두분다 생존해 계시지만 평생을 어머니는 하녀로 사신다.
어머니의 처신이 내, 아니 우리 여자 형제들의 고통이다.
어머니처럼, 내 어머니처럼 벌써 그렇게 살아가는 여동생들이 보여서 슬프다.
유전적인 것일까, 어머니의 불행한 결혼생활이 어떤 동생들에겐 내림 행사처럼 그대로 답습해 가는게 보인다.
우리 아버지의 유전자는 변하지 않으시는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같은 밥상에서 마주 보시고 맛있게 진지를 드셨으면 좋겠다.
고등어대가리는 정말 맛이 없습니다. 내 나이 15살쯤 되었을때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여쭤 봤었다.
정말 고등어 대가리가 맛있냐고..............바보같은 질문을 참고 참았다가 여쭤 봤었다.
맛이 없지만 너희 아버지가 괜히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고 ........가슴이 미어지고 답답했다.
다음 밥상에 또 고등어 반찬 올라왔을때
상아래 있는 어머니의 밥그릇에 고등어대가리를 놓으면서 또 어머니가 좋아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등어대가리 안좋아 하신대요.~! 그리고 맛 없으시대요~!
나는 장녀이니 이 말을 할수 있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아버지는 순간 흠칫하시더니 깐죽스런 모습으로 웃으시면서 멋적어 하셨다.
그 모습이 사춘기인 나에게 주는 느낌은 충격이었다. 아버지의 웃음이 악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로 어머니는 다시는 고등어대가리를 안드셨다.
아니 드실 필요도 없으셨다.
그래도 자식이 자라니 옳고 그름을 판단할수 있어 어머니껜 힘이 좀 되었으리라.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져서 가끔은 어머니를 위해 드리는것도 보인다.
제발 좀 변하셔서 노년을 이제 부터라도 사랑하며 사셨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