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음식을 먹고나서 남편이 평생 처음으로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느끼해서 도저히 못 먹겠다\"는 말을 했다.
어머...저 사람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다니...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그 누구 보다도 화학 조미료를 좋아하고 각종양념이 많이 들어간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어느날은 낮에 딸 먹으라고 아침에 스파게티를 만들어놓고 나서려니
\"나도 이거 먹어도 돼? 먹고 싶네\" 이래서 그러라고 하니까
아침부터 그 뻣뻣한 스파게티 한 접시를 다 먹는 것이었다.
또 어떤 날은 나는 이제 싫어하는 핏자를 먹자고 조르거나
햄버거를 아주 한보따리 사와서 나를 기함하게 만든다.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남편은 핏자나 햄버거 스파게티 그런건 절대 입에 대지도 않고 순토종 한식만 고집했었고
애들이 어쩌다 한 번 그런거 먹고 배부르다고 밥 안 먹으면 난리가 났다.
그런 나쁜 음식 먹이고 밥 안 먹였다고 나를 아주 나쁜 엄마로 몰아세웠다.
(나도 인스턴트보다는 뭐든 다 직접 만들어 먹이는 걸 좋아하는데도..)
김밥이라도 만드는 날이면 \"또 이거 먹이고 밥 안 주려고 그러지?\"이러면서 잔소릴 했다.
김밥을 잔뜩 먹고도 또 다시 새로운 밥상 차려야하는 집은 아마 우리집 뿐이었을거다.
김밥은 밥 아닌가?
군대 가서 질렸다나? 안 먹는 음식 가짓수도 참 많았다.
콩나물, 가지, 북어국,호박 이런건 지금까지도 입에 대지않고
한 번 먹은 것은 그 날 절대로 다시 안 먹었다.
모든 식구들이 밥 때마다 싱겁네, 짜네, 뭐가 없네,단한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온갖 나물이며 새로 끓인 국이나 찌개를 놔두고 인상 박박 쓰면서
\"아니 밥상이 이게 뭐야?김이라도 없어?계란은?\"이러기나 하고...
그러면 또 밥숟갈 놓고 후다닥 일어나서 김과 계란을 준비하는 시어머니.
살림이라도 넉넉하면 모르는데 쌀 떨어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집에서...
아마 이 집안은 먹다가 파장난 모양이었다.
우리애들이 밥투정을 해도 남편은 내가 입맛을 못 맞춘 탓이라고 나를 나무랐다.
어른이 먼저 애들더러 그러면 못쓴다고 가르쳐야 옳은거 아닌가?
친정에서 난 반찬 투정이라도 했다간 아버지한테 혼쭐나고 밥도 못 얻어먹고
쫓겨났었는데...
시아버지 젊어선 밥상을 기껏 차려가지고 들어가면 쓰윽 한 번 훑어보고는
벌떡 일어나 동네중국집에 가서 혼자 자장면을 시켜 드셨다고 시어머니가
두고 두고 얘기해서 같은 여자로서 참 자존심 상했겠고 안됐다고 생각했다.ㅠ
심성이 나쁜 양반은 아니었는데 어쩜 그럴 수가 있었을까?
아마 평생 부엌에 안 들어가봐서 주부의 수고를 알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들을 부엌에 안 들여보내는건 결코 잘 하는 일이 아닌 것같다.
난 차라리 애들이라도 조용히 먹게끔 애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난 애들에게 만들어주던 국적없는 퓨전음식을 수월하게 하는 편이다.
어차피 남편 입맛은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친정에서 익숙해진대로 양념을 극도로 아끼면서 음식을 해왔다.
친정엄마는 양념을 푹푹 쓰면 살림 말아먹는다고 기겁을 해서
난 양념을 아주 아껴 넣어야 하는 걸로만 알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참기름 같은건 살짝 넣다 말아야지 푹 넣기라도 했다간 난리가 났다.
난 어린 마음에 참기름 듬뿍 넣어 먹는 집은 다 망하는건 줄 알았다.ㅎ
게다가 난 화학조미료도 전혀 쓰지 않는다.
또 싱겁게 먹는 편이라 짜게 먹던 사람은 싱거우면 그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한단 사실도 알지 못했다.
반면에 시집음식은 양념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마늘도 후추도 매캐할 정도로 많이 들어가고 참기름도 듬뿍~
그리고 좀 짠 편이다.
그렇게 30년을 산 사람이 싱겁고 양념도 덜 들어간 음식에서
무슨 맛을 느낄 수 있었겠는가?
그걸 난 왜 이제야 알았는지...참 둔하기도 하여라~
그걸 알아챈 지금은 나도 그 중간지점쯤으로 바꾸었다.
양념을 내 기준보다 조금 더 쓰고 간도 약간 세게~
역시 혀끝에 자극적인 음식이 맛을 내는 데는 일조를 하는가보다.
그대신 건강에는 좀 더 나쁘겠지만 어차피 집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나가서 사먹을테니 어쩔 수가 없다.
조미료를 안 쓰는 대신 아무 맛이 없이 그저 짜기만한 꽃소금 보다는
굵은 왕소금으로 간을 하는 등 이제 연식이 좀 되다보니 여러 가지로 요령도 좀 생겼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 급기야 남편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온 것이다.
다른 사람 다 아내 입맛에 길들여져도 내남편만은 끝까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거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