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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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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서.


BY lala47 2010-11-01

개를 한 마리 길렀으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흔히 기르는 몸 장식하고 머리에 리본을 맨 그런 개가 아니라

순수한 한국의 똥개를 한 마리 길렀으면 했다.

나는 개는 개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적 마당에서 기르던 누렁이는 밥값을 했다.

커다란 양품에 밥을 가지고 나가면 고마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누렁이의 밥 당번이었다.

누렁이는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큰소리로 짖었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요즘 아파트에서 기르는 애완견은 염색을 하고 옷을 입고 리본을 매고 자가용에 동승을 한다.

개 자신도 자신이 개인지 사람인지 분간을 못하는 것 같다.

언젠가 남편의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강원도 여행을 갔을 때 한 집에서 데리고 온 애완견은 우리와 같은 식탁에 앉았다.

주인이 숟가락으로 떠주는 찌개를 받아먹는 모습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수저를 놓았다. 개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기르고 싶었던 개는 화날 때 옆구리라도 발길질 할수 있고 찬밥 덩이를 주어도 꼬리 칠수 있는 그런 만만한 개였다.

나도 만만한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생각을 바꾼 것은 친구 집 마당에서 우연히 내가 바라던 그런 개를 보았기 때문이다.

주인의 눈치에 따라서 행동하는 그 개의 모습은 비굴하기까지 했다.

주인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기고만장하던 개가 주인이 큰소리로 야단을 치니 꼬리를 다리 사이에 감추고 비실 비실 마루 밑으로 숨어 들었다.

그건 나였다.

나는 그 곳에서 나를 보았다.

나도 남편이 예뻐해 주면 헤헤 거렸고 남편의 기분에 따라서 꼬리를 내리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최고라고 말해주면 으쓱했었다.

내가 개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달랑 달랑...나도 꼬리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귀염 받는 강아지가 되고 싶었을까.

나는 왜 남편을 내 주인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 주인 양반...

그 말을 처녓적에 제일 싫어했으면서 나는 변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가정에서 남자는 왕이다.

그러나 아내가 왕비 대접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왕은 모든 것을 명령하고 자신의 법칙에 모든 사람이 따라주기를 원한다.

남편은 하늘이었다.

나는 순종하는 여인네로 살아왔다.

절대로 내 주장을 하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줄 몰랐다.

그래야만 사랑이라는 포상이 내려주는 줄로만 알았다.

삼십년 이상의 세월동안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지쳐서 남 모르는 불만을 키워오던 나.. 십남매의 맏며느리라는 허영의 옷을 입고 제법 잘 난체 해오던 나...

잘 보이고 칭찬 받고 싶은 욕심에서 무리한 짓거리도 많이 하고 위선의 몸짓을 수도 없이 해오던 나였지만 막상 잘못을 지적 당하면 꼬리를 내리는 일을 서슴치 않았으니 저 개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대학시절 신촌 바닥에서 남학생들과 어께동무하며 아카라카를 외치던 패기를 다 어디로 갔으며 축제날 Camp Fire앞에서 Folk Dance추던 날들은 참 멀리도 달아나 버렸다. 연고전이 열리던 날 열띤 응원에 동참을 했고 학교 신문에 글이 실리는 날에는 원고료를 받아서 광화문 학사 주점에서 막걸리 파티를 하던 날들은 기억에서 이제 지워져 가고 있었다.

나의 청춘은 그리도 빛나고 아름다웠지만 결혼과 동시에 나는 그 시절을 묻었다.

생활 때문에 더럽혀진 나의 영혼을 거울 닦듯이 닦아 낼 수 있을까.

남편이라는 하늘 같은 존재 때문에 어느 날은 천당에서 어느 날은 지옥에서 헤매는 비굴한 삶은 진정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름 하여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사랑을 유효기한 육십까지 줄 그어 놓았다.

기다림의 허망함을 충분히 겪었고 상실감과 굴욕감이 한계에 달했을 때 나는 육십이 넘은 나이에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지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갔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느냐는 그 남자의 말을 뒤로 하고 나는 홀로 서기를 시도한다.

과연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리움이라든가 후회 같은 것은 이미 없을만큼 나는 겪었다.

그리움과 후회는 내게는 사치였다.

나는 사치스런 감정에 휘말릴 만큼 여유롭지가 않았다.

살아온 날들 보다 살아갈 날들이 적음은 이미 아는 터이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지난 시간과 똑같이 살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도 보상을 바란다.

개라고 무조건의 충성을 하겠는가.

이 세상에 무조건이란 없는 것이다.

베푼만큼 받아야만 한다.

인격적인 기만도 사절이고 내 지난 공로를 무효화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정치판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 당하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자기 방어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나는 수도 없이 공격을 받았다.

공격을 받으면서 나는 강해졌다.

해서 나는 내 남자라고 생각했던 그 남자를 그 여자에게 던져 주었다.

가져라... 이렇게 말이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울타리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서 홀로 선다.

최선을 다 했다는 자부심은 어쩌면 오만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힘으로 버티기로 한다.

나는 알았다.

때로는 오만함이 추진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나는 오만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꼬리치는 개보다는 훨씬 낫다는 결론에 이르른다.

개같은 인생은 사절이라는 말이다.

살아보겠다.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고 나는 주장한다.

육십사세...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글을 좀 써보고 싶다.

진실로 글다운 글을 써보고 싶다.

서툰 글이라도 작은 한 부분 내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작업이야말로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는 순수한 내 것이었으면 한다.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작업이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