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흉보기
박 정 애
따르릉 전화가 온다. 아침 식사 후 조용할 때 전화는 십중팔구는 막내 동서 전화다. 동서 전화가 오면 ‘잠깐’ 하고는 가스불도 끄고 급하면 용변까지 보고 온다. 장기전에 들어갈 태세다. 적어도 30분 이상의 수다가 늘어진다.
수다를 떠는데 한몫해 준 것은 070 인터넷 전화다. 같은 회사 전화기를 쓰면 무료전화다. 우연찮게도 같은 회사라 수다는 부담이 없어 더욱 신이 난다. 수다 첫째가 남편 흉보기다. 자연 한 공장 제품이라 시동생과 영감은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맞아 맞아 똑같아’ 그 여파는 시부모님을 비롯해 시댁 형제자매까지 흉을 보고 나면 속도 후련하고, 같은 느낌으로 산다는 게 퍽 위로가 된다.
이제 남편도 문을 닫고 긴 전화가 이어지면 제수씨와 전화를 하는구나 하고 눈치 챌 정도다. 얼마 전만 해도 남편 흉보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은퇴 십년이 되고 보니 이 빠진 호랑이가 다 되었다. 교사였던 영감은 가족을 학생 다루듯 했고, 고관직에 있었던 시동생은 가족에게 언제나 명령조로 살았다. 학생도, 부하도 없는 그들에게는 가족 역시 학생도, 부하도 아니다.
시댁 형제분들의 공통된 성품은 어떠한 일에서든 정확성을 첫째로 한 것이다. 이러한 성품이 좋은 면도 많았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완벽을 요하는 성품은 가족들이 명령대로 움직여 주길 바란다. 남편 흉이란 남이 하면 속이 상하고, 내가 속이 상하여 원망해 놓고서는 친정에서든, 친구들이 내 말들을 듣고 다른 이에게 옮기면 더욱 속이 상한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가슴에 묻어두는 게 남편 흉이다.
“형님, 이런 수다들을 친정에 가서 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들 에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자존심상 아무한테도 못하고 서로 잘 통하는 동서끼리 마구 떠들어 놓게 되는 수다가 행복스럽기 까지 하다면서 깔깔 웃는다.
사실 친정 여동생에게도 하지 않는 남편 흉을 나도 동서에게 쏟아낸다. 그렇게 하면서도 ‘어찌하겠느냐, 거의 사십년을 산 세월이 아니냐. 지금처럼 살면 돼’ 가 결론이다. 그래도 많이 발전한 우리처지가 아닌가? 이렇게 터놓고 흉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겉으로는 겁내는 척 문을 닫고 소곤거리면서 이야기 하지만 이제 간이 배 밖에 나왔다. 옛날 같으면 문을 펄쩍 열고 무슨 소리 하고 있느냐고 고함도 칠 기세지만 갈지도 못하는 마누라를 모르는 척 넘어간다.
사흘 전, 남편이 퇴직교사들과 제주도 여행을 떠났기에 내가 먼저 전화를 내었다. 혼자 느긋하게 청소도 하지 않고 커피 들고 전화한다고 하니 ‘형님, 해방되어 좋겠습니다. 축하 합니다. 하고 수다가 늘어졌다. 별로 나갈 때 없는 육십 대 후반의 남편, 외출은 모임이나 여행이 아니면 줄곧 방콕이다. 여유로움이 생긴 밤이기에 맘 놓고 개임도 하고 소식이 뜸한 친구, 친척들에게 전화로 수다를 떨었다. 밥도 대충 먹듯 말듯,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아무렇게나 해놓고 있어도 간섭 없는 자유, 정리되지 않는 집이 더 다감하게 느껴지다가 어느 한 순간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그토록 흉을 봤던 남편이 사흘쯤 지나니 없어면 안돼겠다는 존재로 다가왔다. 폰을 걸었다. 아니, 먼저 걸려왔다. 반갑게 받았다. 몇 달을 못 본 사람처럼 그러한 기분의 음성이었다.
자식들도 자기 가정을 이루고 살면 그 가정에 충실해야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 한통 없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현황이다. 바쁜 젊은 날 보다 지금이 더 의지하고 살아야 할 존재로 다가온다. 퇴직 후 영감 보호가 없으면 못 살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남편이 나에게 묻는다. \"당신, 나 죽어도 혼자 살 수 있겠나?\" 라고 물었을 때 \"그럼 같은 날 같은 시에 갈 거라고 믿었나요? 누가 먼저 가도 다 살기 마련입니다.\" 라고 대답 했더니 많이도 서운해 함이 역력하였다. 퇴직 십년 후 또 그 질문을 했다. 이번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 그래야 연금도 오래오래 많이 받을 수 있잖아요. 건강관리 잘 하세요.\"
연금을 앞세워 오래 살아야 된다고 말했지만, 남편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서로가 의지해야 할 나이에 와있다. 남편은 다음세대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부정한 존재지만, 빈집 며칠 만에 편안함 보다는 허전함이 더하다. 남편이 소중한 존재임을 실감하고 있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