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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발 참지 마!


BY *콜라* 2010-09-01

 

검사결과가 나오는 한국의 오후 시간을 기다리며

선잠을 자다가 깨어 난 새벽 4,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구.. 또 전화 했냐,,,,, 하루 종일 전화하면 전화비 많이 나올텐데 .

-엄마가 그걸 왜 신경 써. 가슴이 타 들어가는 거 같아 엄마,,

 괜찮다는 결과 듣기 전까지 나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겠어

-괜찮겠지. 너 병 나겠다.

 

그리곤 신음인 듯 약간의 고통스런 엄마의 숨소리가

나지막이 들릴 뿐 말이 없다.

 

전화가 끊겼나,,,,,, 무슨 일이 있나,,,,,, 통증이 심한가,,,,,

수 많은 나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간다.

엄마! 엄마!! 엄마!! 급히 불렀다.  

 

-,,,,, ,,,,,,,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 지금,,, 상처를 소독하고 있다,,,

-그럼 소독한다고 말을 했으면 전화를 끊었지, 놀랐잖아 엄마

 

가슴을 쓸어 내리며 전화를 잠시 끊었다.  

 

늘 이렇다.

엄마의 인내심은 참으로 존경 할만 하다.

그 인내가 엄마의 육체를 갉아 먹는 독버섯인 줄도 모르고

특히 당신의 건강에 관한 한 그 인내심은 인간으로서 한계까지 발휘된다.  

 

생인손을 앓아 퉁퉁 부은 손가락을 조선간장을 팔팔 끓여 순간 온열법으로 치료하고

편도선이 곪아 말문이 막혔어도 딱 하루 병원다녀 오곤 자가치료를 한다.

무릎 관절염에는 생 쑥을 찧어 붙이고 밤마다 찜질해서

작은 바가지 만하게 고였던 관절의 물을 인공으로 빼지 않고 치료했다.

이빨도 아프면 치과에 가지 않고 직접 빼버린 통에  

언니가 앞뒤 설명 없이 납치 하듯

강제로 치과에 모시고 가서 임플란트 9개를 하느라 반년 가까이 치료한 후 겨우 마쳤다.

 

가난한 집 8남매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시동생, 시누이 공부시켜 출가시킨 후

자식들을 위해 고생해야 했던 날의 고생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오빠가 매월 3백 만원의 용돈을 보내드리고, 필요한 건 또 딸들이 챙기는데도

그 돈을 꼬깃꼬깃 모아 통장에 넣어 두고, 자장면 한 그릇 사 먹기도 아까워하는 엄마,

이제 그 가난을 훌풀 털어버릴 때도 되었건만

습관처럼 당신의 욕망을 내면에 다지고 다지며 사신다.  

 

이번 수술만 해도 그렇다.

배가 아프면 바로 병원을 가지 않고 한 이틀 참고

통증이 심해지자 사흘 만에 한의원 가서 침 맞고

5일째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으로 가셨단다.

 

복막염으로 진행된 걸 확인하기 위해 수술 전 검사에서

병을 발견하게 되었다.  

해마다 봄에 종합건강검진을 했었지만 노인이기에 부인과 검진을 간과한 의사의 오류와

엄마의 인내심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을

지금 탓할 여유도 없다.

 

벌써 늦었을까.. 늦어버린 걸까. 아닐 거야.

수 없이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애만 태우는 나는

자식이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감할 뿐이다. 

 

1차 조직검사에서 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의사는  

더 정밀 진단을 위해 큰 병원으로 옮겨 내과 산부인과 검진이 끝난 후

정확한 소견을 말 할 수 있다며 대답을 유보했다고 한다.

 

엄마의 인내가 결국 병들을 키워 오늘 이 상황으로 몰고 왔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캐나다에서 달려간 오빠와 언니는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리며

말을 아끼고 있었다.   

섣부른 결론으로 고통을 당겨 할 막내 동생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자신들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오빠도 나도 알고 있다.

그 침묵이 무얼 의미하는 지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하는 의사의 한 마디를 조금씩 포기하며

수술이라도 할 수 있는 상태이길 바라고 또 바라며 기도하고 있다.

 

처음 엄마의 수술 소식을 듣던 지난 목요일 8로부터

겨우 4일이 지난 오늘이 1년쯤 지난 듯 길게만 느껴진다.

 

자식들의 이런 걱정과 달리 엄마는 병원 생활이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한다.

진심일 것이다.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 와서 7남매 시동생, 시누와 자식들 뒷바라지

경제력 없는 무능력한 가장이면서 게다가 권위적이기까지 한 남편의 뒷바라지.

엄마의 고생은 가난을 벗어나고도 굴레처럼 엄마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늙고 나약해 진 육신마저 몹쓸 병마에 빼앗기고서야

겨우 찾은 지금의 편안함이

수술의 통증보다,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엄마에겐 더 크고 소중하리라.

 

누군가 중병에 걸렸을 때 환자에게 그 사실을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어 왔을 때, 나는 한치 망설임도 없이 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 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부연까지 했었다. 

남의 일일 때 거리낌없이, 거칠 것 없이 뱉었던

나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가벼웠던가 깊이 반성한다.

 

나의 일로 부딪쳤을 때 결코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걸..

남의 일 앞에서는 쉬웠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마치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쥐들의 회의처럼

자식들인 우린 그저 감추기에 급급한 채

앞으로 혹독한 치료를 엄마가 잘 견뎌주길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세상의 의술에 한 가닥 희망을 품을 뿐이다.   

 

곧 퇴원해서

10월의 단풍놀이를 위해 벌써 엄마가 예약해 두었다는 설악산 콘도에서

친구들과 현철의 봉선화 연정을 멋지게 부를 엄마를 꼭 볼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내가 귀국할 때까지 집에 갈 생각하지 말고 병원에서 편안히 쉬고 있으라고 다짐받았다.

 

그리고 나도 눈물을 멈추기로 했다.

그것보다 더 급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엄마와 후회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싶다.    

 

엄마는 며칠 째 울며 불며 안달하는 막내 딸, 내 건강을 염려하며

괜찮다고만 하신다. 그 말에 고마움보다 울컥 화가 치민다.   

 

엄마..

엄마도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싫으면 싫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 미우면 밉다 자고 싶으면 자고 싶다

화나면 화난다……. 말해.

제발 참지 마. 그게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거야.

 

어쩌면 너무 늦어버렸을 지 모를 다짐을 받고 또 받으며

전화를 끊었다. .

 

2010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