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다\"
항상 나에게 뭔지 모를 욕구불만을 느끼게 했던 격언이다.
누구보다 말이 많은 나는 이 말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언제나 기막힌 표현을 땡겨 좌중을 통쾌한 웃음 속으로 빠뜨리면서 받던
그 화려한 말 잔치의 상장이 일거에 빛을 잃는 순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와는 친할래야 친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묘한 컴플렉스까지 느끼게 하는 그런 금언이 바로 이거다.
오숙희씨의 \'수다로 풀자\'라는 책에 나오는 수다에 대한 지론이 곧 나의 지론이며
나 또한 그녀처럼 이 수다 저 수다로 이어지다가 혼자가 되면 전화기를 돌리고야마는
요즘 유행하는 바로 그 \'수다맨\'인 것이다.
한 술 더 떠 시외전화로 떠들었더니 전화비가 비싸서...
다이얼패드를 이용해볼까 노려보았지만
음감이 안좋아 골아프다고 사망 소식이 아니면 돌리지도 말라는 수신자들의 엄포에...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컴퓨터 메일보내기로 그 수다를 잇다가
드디어 칼럼방까지 마련하여 공개적으로 떠들고 있으니
오숙희씨가 나에게 \'아이고~ 형님!\'할 지경이다.
이런 수다발을 가지고 사는 마누라와 아침저녁으로 대적하려니
내 남편은 바로 그 \'침묵이 금이다\'는 표어를 부적처럼 이마에 붙이고 맞짱을 뜬다.
어릴 적부터 상담과 철학으로 무장된 아빠 밑에서
무엇보다 대화를 해결의 실마리로 배웠던 나는
사실 신혼 초부터 번번히 생기던 의견 충돌을
조근조근 차근차근 대화로써 풀고자 여러번 시도해본 적이 있다.
남편은 \'겁많은 강아지가 짖는거\'라는 표현 억제의 집안에서 자라나
상명하복의 군국주의적 문화가 몸에 익은 터라
굳이 쓸데없는 말로 서로간의 감정적 골만 깊게하는 소모적 대화를 기피하는 편이었으나
무조건 서로 이견을 좁히는데 대화만한 게 있냐는 나의 꼬심에 넘어가서
처음 몇번은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말로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에 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껏 마련한 대화의 장은 언제나 말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잠을 못자는
내 엄청난 아집에 밀려 번번히 경색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겨우 꼬드겨서 나와보았던 남편의 본심은
두꺼운 등딱지 속으로 꼭꼭 숨어버린 거북이 꼴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남북 회담 같은 그런 식의 협상적 대화는 없다.
말이란 결국 서로간의 감정만 자극하게 되고 이견만 극대화시키는 불필요한 존재로
영원히 낙인찍혀 버린 것이다.
적어도 우리 둘 사이에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말을 안하고 사는 부부란 말은 아니다.
신혼 초부터 어우동을 찍느라고 밤을 새는게 아니라
서로 큰 침대의 양 끄트머리에 각기 자기자리를 확보하고는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이야기로 훤한 새벽을 맞기 일쑤였고
지금도 수도꼭지 틀어놓으면 물나오듯 하는 마누라 수다에
꽤나 매너있게 변죽을 잘 울려주는, 언로가 살아있는 부부임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말이란 게 어디까지나 사는데 필요한 2급 수단이지
정작 첨예하게 감정이 대립되는 문제에 직면하면 역시나 침묵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나는 다시 침묵의 큰 칼에 깨갱하는 달변의 과도를 들고
전의를 상실하고서는 두 손을 들어버리고 만다.
그러고는 억울해서 속에서 천불이 난다.
침묵에는 자기 감정 정리나 알맞은 표현을 위한 고심,
말하는 시기나 톤을 결정해야하는 등의 노력이 하나도 들지않는 공꺼인데
어째서 낭중에 길이를 대보면 내 화려한 말빨이 밀리는지
알 수 없는 억울함으로 부글대는 것이다.
그러다가 김용옥 님의 노자강의를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본디 우리나라는 노장사상의 뿌리가 매우 깊은데
그 철학적 바탕에는 인생을 달관한 듯한 초연한 침묵이 우대받는 것이란다.
아웅다웅 요래저래 하는 것들이 다 해탈을 못한 고양이 싸움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의 인식 자체가 그렇게 정확하게 말로 따지고 재고 알아보는 것을
침묵보다 하위에 두게 되는 문화라는 것이다.
내가 항상 느껴왔던 침묵에 대한 컴플렉스가 영원불변의 절대 가치가 아니라
어떤 시대의 사상이나 문화적 바탕에 기인한 결과라는 것이
적잖이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럼 그렇지...\' 쾌재를 부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나 자신도 결국은 침묵의 가치를 맨 위로 치는
이 땅 이 시대의 인물임을 잠시나마 망각한 경망스런 찰나였을 뿐이다.
아직도 나는 그 많은 욕구불만의 항변을 준비하고도
\'침묵은 금이다\'는 부적에는 나도 모르게 사그라드는 강시 꼴이다.
해서 오늘도 살금살금 새해 처음에 부치는 칼럼의 시작을 부끄럽게 시작한다.
꼭 똑같이 분만실 들어가서
누구는 아무 말 없이 제 할 일 다하고 점잖게 아이 하나 안고 나오는데
남 다 낳는 아이 나만 혼자 죽겠다고 바락바락 난리 버거지를 치다가
하나도 안 다른 애기 안고 겸연쩍게 빠져나올 그 순간이 자꾸만 오버랩된다.
수다 잘 떠는 사람이 그 수다를 사랑하지 못하고
침묵을 더 그리워하는 것은
...평생 저 섬처럼 고독한 일이다.